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파행 사태가 한 달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사태 초기만 해도 환자와 보호자들은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을 비난하면서도 전공의들이 곧 병원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전공의의 빈자리를 지키던 전임의와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 행렬에 동참할 뜻을 밝히면서 의료 현장은 말 그대로 대란으로 치닫는 중이다.

18일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진과의 간담회에서 의료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거듭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했다. 보건복지부도 필수의료 분야에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한편 의료체계 왜곡의 주범으로 지적돼 온 상대가치 수가 제도도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의사 집단이 의료개혁의 핵심 요소로 지목한 사항들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작금의 의료 난맥상은 상당 부분 의사수 절대 부족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내놓은 의대 증원 방침에 대해 국민 10명 중 8명이 전폭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수가체계 개편 방침에 대해서마저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왜 이제서야 수가체계 개편 얘기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의료 파행이 지속되면서 전국 의료 현장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다. 환자 곁을 떠나지 않은 의사들, 의사 업무 일부를 맡게 된 간호사들, 그리고 비상 상황에 투입된 구급대원들이 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대란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오는 25일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전국 의대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면 의료 공백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의대 교수들은 2000명 증원을 못 박은 정부 정책을 먼저 거두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전공의 복귀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을 말하지 않는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집단행동으로 정부를 굴복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의료계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뇌혈관외과학회와 뇌혈관내치료의학회 등 뇌혈관 전문학회 소속 약 1300명의 의사들은 어떤 경우에도 의사는 환자를 떠날 수 없다며 병원 사수를 선언했다. 주

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전공의 복귀를 촉구했고 방재승 전국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전공의 복귀와 즉각적인 대화를 호소했다. 빅5 병원의 일부 교수들도 전임의 복귀를 호소 중이라고 한다. 국립대 총장들도 집단휴학에 나선 의대생들의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한 달 동안 계속된 불편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의료 개혁에 대한 국민 열망은 크다. 국민들은 이번 사태가 의대생 유급과 전공의 행정처분, 병원의 줄도산 등 의료 파탄으로 이어지길 원하지 않는다.

의료계는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는 게 순리다. 정부도 퇴로 없는 밀어붙이기식 대응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모두 대화 창구를 열어놓고 힘겨루기 대신 합리적 대화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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