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47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9년 2월 기소된 지 약 4년 11개월 만이다.

앞서 같은 사건으로 기소됐던 전현직 법관들 대부분이 무죄 판결을 받은 데 이어, 헌정 사상 첫 사법부 수장의 직무 관련 위법 판단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이 사건은 박근혜 정부 시절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 장악을 위해 사법농단 몰이를 했다는 게 핵심적 골자였다. 발단은 2017년 2월 이탄희(현 민주당 의원) 판사가 법원행정처 발령 11일 만에 수원지법 안양지원에 복귀한 이례적 인사였다.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 판사에게 그가 속한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 대회를 막으라고 지시했는데 이 판사가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내자 보복 인사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판사가 조사 과정에서 “행정처 컴퓨터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3차례 법원의 자체 조사에서 의혹에 대해 문제 삼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관들은 물론 법원장과 고법부장들도 “재판 거래는 상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원을 찾은 자리에서 “사법 농단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하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적극 협조하겠다”고 호응하면서 수사가 본격화됐다.

이후 김명수 사법부는 법원 내부 자료를 검찰에 통째로 넘겼고, 검찰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 지휘 아래 검사 50여명을 동원해 5개월 동안 수사를 진행했다.

재판부는 최대 쟁점 중 하나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 “강제징용 관련 검찰 공소 사실은 범죄 증명이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 판결을 대법원이 지연시켰다며 기소된 혐의 중 하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정부에 외교적 부담이 됐던 해당 사건의 판결을 늦추는 등의 ‘재판 거래’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관련 항소심 선고를 전후로 법원행정처가 재판 동향과 전망을 검토해 청와대와 교감하며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사법의 정치화’를 불러왔다. 문재인 정권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사법 개혁을 명분으로 이 의혹을 확대 재생산했다. 김 전 대법원장은 우리법·인권법연구회와 민변 출신을 주요 법관에 앉혔고,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등으로 재판 지연이 확산됐다.

국회의원 선거 재판 선고가 늦어져 21대 의원들이 임기를 사실상 채우는 데 기여했다. 종전 판례를 뒤집고 전교조를 합법화했고, ‘선거 TV 토론 거짓말은 허위 사실 공표가 아니다’라는 황당한 판결로 이재명 지사가 대선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현재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법원은 이 사건을 기화로 ‘사법의 정치화’ 족쇄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확고히 지키며 거듭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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