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독재서 다당제 국가로 변화
38년째 장기집권해온 훈센 총리
‘훈센 장남’ 훈 마넷, 총리 지명돼
‘훈센 왕조’ 열려… 향후 노선은?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이 7일(현지시각) 훈 센 총리의 장남 훈 마넷 캄보디아군 부사령관을 차기 총리로 지명했다. 훈 마넷 지명자는 오는 22일 국회 신임 투표를 거쳐 총리로 취임한다. 사진은 훈 마넷이 지난달 21일 프놈펜에서 캄보디아인민당(CPP) 선거 운동을 마치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AP/뉴시스) 2023.08.08.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이 7일(현지시각) 훈 센 총리의 장남 훈 마넷 캄보디아군 부사령관을 차기 총리로 지명했다. 훈 마넷 지명자는 오는 22일 국회 신임 투표를 거쳐 총리로 취임한다. 사진은 훈 마넷이 지난달 21일 프놈펜에서 캄보디아인민당(CPP) 선거 운동을 마치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AP/뉴시스) 2023.08.08.
편집자 주

지난달 치러진 캄보디아 총선에서 훈센 현 총리가 이끄는 인민당(CPP)이 또다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집권 여당은 전체 의석 125석 가운데 120석을 확보하게 됐다. 캄보디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NEC)는 “이번 제7회 총선에서 전체 투표율 84.59%(유효 투표수 777만 4276표· 무효 44만 154표) 가운데 집권당인 인민당이 득표율 82.3%인 639만 8311표를, 야당인 푼신펙당이 9.2%에 해당하는 71만 6490표를 얻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장남인 훈 마넷이 차기 총리로 공식 지명됐다. 아들에 권력을 이양하면서 ‘훈센 왕조’ 열렸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이 아사아 전문가들의 시각을 담은 기고문을 보내와 번역 게재한다.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치러진 캄보디아 총선에서 훈센 현 총리가 이끄는 인민당이 또다시 승리를 거뒀다. 5년 전인 2018년 총선에선 인민당이 125석 전석을 독차지했다. 이번 선거에선 5석은 왕당파당인 푼신펙당에게 양보했다.

푼신펙당은 과거 1990년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이 만든 정당이다. 국왕의 큰아들인 라나리드 왕자가 오랜 기간 총재직을 맡아 이끌던 당으로, 지난 2021년 그가 교통사고 후유증에 의한 지병으로 파리에서 사망한 뒤 그의 큰아들이자 시하누크 국왕의 장손인 노로돔 차끄라붓 왕자가 당의 새 지도자로 선출돼 지금까지 당을 이끌어왔다.

38년째 장기집권해온 훈센 총리 입장에선 이번 총선에서 5석을 야당에 빼앗긴 셈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대체로 만족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총선에서 125석 전 석을 차지하는 바람에 서방세계로부터 ‘일당 독재국가’라는 조롱과 비난을 호되게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그나마 5석을 차지해 대외적으로 ‘다당제 국가’라는 외형을 갖춰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됐다. 게다가 푼신펙당은 과거 연합정부를 함께 구성할 만큼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다. 친(親) 정부 성향에 온건적 왕당파인사들이 주축, 무늬만 야당이다. 요컨데 훈센총리 입장에선 관리가 쉽다.

◆서방 “독재국가” 유권자 “야당이 문제”

이번 제7대 총선은 역대 가장 싱겁고 재미없는 선거였다. 긴장감이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과가 이미 예측됐기 때문에 선거전에서 어떤 기대와 관심도 끌지 못했다. 총리의 최대 경쟁자이자 국외 망명 생활 중인 야당 지도자 삼랭시의 지원을 받고 있는 촛불당(CP)이 등록서류 미비로 선거에 불참한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당을 포함해 총 18개 군소정당이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새로 생긴 정당 이름들은 시민들 대부분이 기억조차 못 할 정도였다. 그나마도 일부 정당들은 준비와 예산 부족 등으로 총선 등록마저 중도 포기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 탓에 7월 초부터 약 3주간 열린 공식 유세 기간 프놈펜 시내는 온통 인민당을 상징하는 하늘색과 흰색 깃발만이 나부꼈다.

서방 외신들의 시각과 달리 캄보디아 유권자들은 그다지 큰 불만이 있어 보이지 않다. 장기집권해온 인민당에 대한 불만이나 비난보다는 오히려 무능한 야당 지도자를 탓하는 시민들이 더 많았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앞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 미디어들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지난 1985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훈센 총리의 장기 집권’이라며 맹비난했고, “캄보디아는 독재국가”라고 낙인찍기 일쑤였다.

◆아들 훈 마넷, 친중 노선 확실시

최근 캄보디아 국민들 사이 가장 큰 관심사는 현 훈센 총리의 뒤를 이을 후계자 문제다. 훈센 총리가 후계자로 이미 지목한 장남 훈 마넷은 정해진 법과 절차에 따라 8월 말 캄보디아의 새로운 최고지도자가 될 예정이다. 7일(현지시간) 캄보디아 국왕이 훈 마넷을 총리로 공식 지명했다. 집권 인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보유해 의회 통과는 확실시된다.

일부 외신들은 훈 마넷은 미국 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뉴욕대 석사와 영국 브리스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그가 권력을 물려받으면 곧바로 친(親) 서방 정책을 펼칠 것이란 기대감을 내심 가진 듯하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이다. 물론 반대로 그가 아버지인 훈센총리의 유산을 물려받아 친 중국 정책을 고수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냉정히 보면 현재 시점에선 후자쪽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중국은 오랜 기간 동남아시아 지역에 공을 들여왔고 특히 캄보디아에 투자 명분으로 많은 공을 들여왔다. 캄보디아도 이에 화답해 미국과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반대로 중국과 가깝게 지내기 시작했다. 훈센 총리 입장에선 미국 등 서방진영이 “독재국가”라며 민주주의 개선을 압박한 점도 중국 친화 외교에 영향을 미쳤다. 훈 마넷이 새 총리에 오르더라도 기존 친 중국 성향의 외교정책은 방향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훈센 ‘상왕 정치’로 존재감 이어갈 듯

아버지 훈센총리는 공식적으로는 퇴임하더라도 현실정치에서 당장 은퇴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훈센 총리 스스로도 아들이 확실히 권력을 잡을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지난달 치러진 캄보디아 총선에서 훈센 현 총리가 이끄는 인민당(CPP)이 또다시 승리를 거둔 뒤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은 지난 7일(현지시간) 훈센 총리의 장남인 훈 마넷을 차기 총리로 공식 지명했다. 아들에 권력을 이양하면서 ‘훈센 왕조’ 열렸다는 평가다. 사진은 훈센(왼쪽)과 훈 마넷 (로이터/연합뉴스) 2023.08.08.
지난달 치러진 캄보디아 총선에서 훈센 현 총리가 이끄는 인민당(CPP)이 또다시 승리를 거둔 뒤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은 지난 7일(현지시간) 훈센 총리의 장남인 훈 마넷을 차기 총리로 공식 지명했다. 아들에 권력을 이양하면서 ‘훈센 왕조’ 열렸다는 평가다. 사진은 훈센(왼쪽)과 훈 마넷 (로이터/연합뉴스) 2023.08.08.

아들 훈 마넷도 이 점을 잘 안다. 한 때 건강 이상설까지 나돈 적이 있지만, 1952년 올해 나이 71세의 훈센 총리는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아직 정치 초년생인 훈 마넷이 새로운 외교정치를 펼칠 만큼 당내 입지와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고 여전히 아버지의 거대한 그늘 안에 있어 아들이 권력을 확고히 잡을 때까지 아버지 세대 외교정책 노선을 그대로 답습하며 자신의 측근 세력을 규합,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애쓸 것이다.

아버지 세대 기성정치인들과의 알력이나 불만 가능성도 있기에, 아버지 훈센이 이를 최대한 누그러뜨리며 그들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얻어내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훈센 총리는 퇴임 후에도 최고자문회의 의장직은 물론이고 상원의장까지 맡을 것이란 소식이 들려온다. 총리가 만약 상원의장 자리를 차지한다면 기존 상원의원들의 대대적인 물갈이와 함께 자신들의 오랜 동지들이자 장관직 등 주요 고위직에 있던 거물급 인물들이 대거 상원으로 편입돼 새로운 권력 기구로 재편성, 새로 출범한 훈 마넷 정부에 힘을 실어주며 때론 훈수를 두거나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며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게 분명하다.

◆왕위 오른 왕자, 향후 집권 방향은

현재 훈 마넷의 이미지는 수수하고 친절하며 예절 바른 이미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공부한 탓인지 매너도 깍듯하다. 말 한마디에도 신중하고 상대의 비위를 거스르는 오만함이나 권의 의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휴일에 그의 복장은 하얀티셔츠와 청바지의 수수한 차림이다. 이동 시에도 수행 경호원 없이 혼자 다녔다.

성격은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버지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는 부족하다. 총선을 앞두고 이미 수개월 전부터 훈 마넷 중심으로 그림자 내각이 구성됐다고 한다. 차기 장관이나 고위직으로 입줄에 오르는 사람들 상당수는 현 장관들의 자제들이 많다. 권력의 대물림이 이어질 것이다. 새로운 내각 장관급 이상 각료 40명 중 10명 이상이 여당 간부이거나 자제들이 차지할 것이란 소문도 있다.

내각 후보자들의 공통점은 미국와 호주 프랑스 등 서방세계에서 유학을 마친 엘리트들이라는 점이다. 서방국가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세련된 글로벌 매너를 배웠으며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췄다. 지나친 친 중국 외교 노선이 나중에 조국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엄청난 리스크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외교정책에서 균형을 지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훈 마넷 내각은 국가 빈곤의 이유가 공무원사회의 부정부패 때문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는 분석이다. 캄보디아 외교전문가들은 차기 지도자 훈 마넷 정권이 확실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미국은 때를 기다릴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이에 훈 마넷 총리는 어느 쪽에도 적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고, 국익에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아세안국가들의 일관된 정책기조를 계승해 균형외교를 추구할 전망이다. 1600만 캄보디아 국민들은 새 국가 리더십에 사뭇 들떠있다. 다소간의 불안정이 예고되기도 하지만 뭔지 모를 희망도 꿈틀대고 있다.

캄보디아의 훈 센 총리가 7월23일 총선에 수도 투표소에서 투표한 뒤 나와 부인을 대동한 채 투표 잉크가 묻는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제일야당의 선거참가가 저지되자 야당 세력이 고의 무효투표 운동을 벌이자 훈 센은 이의 엄단을 지시했다. (AP/뉴시스) 2023.08.08.
캄보디아의 훈 센 총리가 7월23일 총선에 수도 투표소에서 투표한 뒤 나와 부인을 대동한 채 투표 잉크가 묻는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제일야당의 선거참가가 저지되자 야당 세력이 고의 무효투표 운동을 벌이자 훈 센은 이의 엄단을 지시했다. (AP/뉴시스)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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