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제재에 수세 몰린 러시아
中, 서방-러 사이서 실익 챙겨
중국과 지리적 가까운 동남아
中, 탈달러에 기축통화 도전장

편집자주

중·러 밀착 행보가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3연임을 확정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방이 광범위한 경제제재에 나서 궁지에 몰린 러시아에 손을 내밀었다. 미국이라는 공동 라이벌을 둔 두 나라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건데, 그 사이에서 중국이 각종 경제적·외교적 실익을 챙기고 탈달러화 상황에서 동남아와 친중 지역을 중심으로 위안화 확대를 노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이 아사아 전문가들의 시각을 담은 기고문을 보내와 번역 게재한다.

2020년 이후 역외 달러·위안 환율이 1달러당 7위안을 돌파한 1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와 위안화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20년 이후 역외 달러·위안 환율이 1달러당 7위안을 돌파한 1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와 위안화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 뉴시스)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지난달 시진핑 중국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초청으로 크렘린궁을 찾아 2박 3일간 정상회담을 가졌다. 세 번째 임기 첫 방문국으로 집권 3기의 중요 외교 안보의 중심축이 러시아임을 잘 보여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지역 내 특별군사작전으로 서방이 광범위한 경제제재에 나섰다. 러시아 입장에선 에너지 판로가 끊기고 소비재 수입선도 막혔다. 미국이 외화자산까지 동결한 상황에서 군사작전까지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중국이 러시아의 부족한 것을 대부분 채워 주는 ‘천군만마’로 등장한 셈이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으로서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거 수입했고, 서방 기업들의 철수로 부족해진 소비재 공급 부족 역시 메워줬다. 높아진 영향력으로 국제사회에서 서방의 러시아 고립 외교를 비판하는 돈독함도 과시했다.

◆중러 급진전 부른 우크라 사태

당초 중러관계는 과거 1960년대 말 국경 분쟁으로 살벌한 갈등을 겪다가 냉전 시대를 겪으면서 조금씩 개선됐다. 초강대국 미국을 견제할 목적이 다분했다. 지난 1996년 ‘전략적 파트너십’을 선언한 뒤 2001년에는 중-러 선린우호 협력조약에 서명했다. 2004년엔 해묵은 국경 문제까지 완전히 처리하면서 본격적인 밀월관계에 접어들었다. 2019년에는 양국 관계를 ‘신시대의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격상시켰으며, 20년 기한이던 선린우호 협력조약마저 2021년까지 연장했다.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개시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초강대국 미국을 공동의 라이벌을 둔 두 나라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서방의 제재로 맥도널드와 코카콜라를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대표 기업들이 썰물처럼 러시아에서 빠져나갔다.

◆러시아의 ‘달러 안 쓰기’ 행보

군사적 충돌 시작 직후인 지난해 3월, 서방은 국제 금융거래를 중개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 SWIFT) 시스템에서 러시아은행을 배제했고, 러시아 중앙은행의 국외 자산(약 3000억 달러)마저 동결시켰다.

달러로 무역 결제가 어려워진 러시아는 에너지 판매대금을 루블화로 받는 한편 중국 위안화를 쓰기로 결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평소에도 세계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와 유로를 ‘독을 가진 통화’라고 지칭할 정도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서방 제재 속에 러시아에서 중국 위안화가 중요 국제결제수단으로 통용된 결과, 러시아 중앙은행 통계로 군사적 충돌 전 0% 수준이었던 위안-루블 간 거래 비율이 지난해 11월 기준 25%까지 확대됐다. 일부 러시아은행들은 위안화 현금 인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 주요 기업들은 이미 중국 위안화로 표기된 채권을 발행 중이다.

◆위협적인 중러의 윈윈전략

러시아의 ‘달러 안 쓰기 운동’은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미국 달러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달 중러회담은 말 그대로 ‘상생(win-win)의 길’을 제시했다. 러시아는 중국에 안정적인 천연가스와 석유 수출 공급을 보장하는 투자에 집중했다. 오랜 기간 최대 고객이던 유럽보다 인구가 3배 가까이 많은 고성장 국가 중국을 새 고객으로 맞이한 것은 러시아에 단기적으로나 중장기적으로도 크나큰 기회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평가다. 중국 입장은 말 그대로 ‘금상첨화’다. 에너지 수입국 입장에서 당장은 물론 장차 수십년간 아주 싼 값에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너지 수입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으니, 달러 가격 등락에 전혀 신경 쓸 필요도 없어 경제정책에서 예측 가능성이 크게 증가한 점은 미중 전략경쟁 환경에서 고지를 선점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위안화·루피화 잇따라 달러에 도전장

중국은 러시아뿐 아니라 지구촌 전역에서 위안화를 미국 달러를 대체할 국제결제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위안화 기축통화는 중국의 꿈, ‘중국몽(夢)’ 중 하나다. 최근에는 프랑스와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등과도 잇따라 에너지 결제 통화로 위안화를 인정하는 결제를 성사시켰다.

지난해 무리하게 진행된 미국의 긴축정책 탓에 손해를 본 나라가 한두 나라가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손에 놀아나는 모습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 미국의 달러화를 대신할 결제수단이 필요하다는 나라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국경충돌을 빚으며 잠복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인도도 자국 통화 루피화를 국제 결제수단으로 삼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인도의 수닐 바르스왈 상무장관은 국제결제통화로서 루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국제무역 결제가 가능하도록 관련 조항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비우방 국가들은 물론 우호적인 국가들조차 중국과 협력을 모색하며 새로운 주요 경제 블록을 형성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화교의 천국 동남아시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도 강대국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 주요 사건 중 하나다. 이 장면을 지켜본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강한 미국’이란 도그마를 계속 인정하는 데 부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남미 강국이자 브릭스(BRICS, 신흥 5개국) 회원국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도 미국 정책에 실망한 나머지 남미와 브릭스의 공동화폐를 만들자며 이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 틈을 놓칠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자국 위안화를 더욱 국제화하고 세계 무역과 금융시장에서 미국 달러에 대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지난 2021년 10월 새로운 지불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 온라인 통화인 디지털 위안을 출시하기까지 했다.

막강해진 경제력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한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거대 인구와 시장을 가진 아시아 권역에 점차 관심을 쏟고 있다. 중국은 특히 동남아를 자신의 텃밭 정도로 인식해왔다. 중국 입장에선 여러 대륙 중 동남아가 지리적·문화적으로 가장 접근하기 편한 곳인 셈이다.

캄보디아도 중국과 천년 가까이 오랜 교역을 해온 나라다. 앙코르 유적에 있는 바이욘 사원 벽화에도 현지에 정착한 중국 화교들의 생활상을 담은 사암 조각 그림들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시내 고층건물들 상당수가 중국 자본으로 지어진 상태다.

중국 관광객들의 대거 유입으로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관광도시 시엠립의 주요호텔들과 기념품점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위안화 결제가 가능해졌다. 코로나 여파로 인해 중국 관광객들의 유입이 크게 줄어드는 바람에 최근 위안화 통용이 지지부진해진 측면도 있지만, 중국 화폐가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에 알게 모르게 침투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 식민 역사 탓에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베트남 같은 나라들도 있지만, 대체로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 나라 대다수는 중국과 오랜 시간 교역과 통상을 해왔고, 수천년간 화교들이 정착하며 동남아 지역 경제를 장악해왔다.

◆달러보다 더 자주 만나는 위안화

이러한 분위기 탓에 중국 위안화에 대한 현지 사회의 심리적 거부감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재래시장 환전상에 가도 마오쩌뚱의 초상화가 그려진 위안화 지폐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머지않아 중국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뿐 아니라 수도 등 대도시에서도 위안화를 자국 화폐처럼 결제수단으로 삼거나, 은행 ATM에서 인출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현재 전 세계 각국의 외환 보유고는 여전히 대부분 달러나 유로화, 또는 금으로 채워져 있다. 반대로 중국 통화는 아직 세계적으로 지급준비금으로써 활발한 수요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앞으로 50년 앞을 내다본다면 이야기는 분명 달라진다. 중국과 함께 인구수로 따지면 인도도 무시 못 한다. 두 나라 인구수를 합치면 30억명이 넘는다. 이는 지구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다. 아시아가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 당장 위안화가 국제기축통화로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미국이 현재까지 유지해온 달러를 기반으로 한 패권주의와 자국 우선주의 노선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은 한 위안화는 그 빈틈을 파고들어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갈수록 키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여전히 중국은 정치적 사회적 리스크가 큰 나라인 데다 국제사회를 이끌 리더십 역시 부족하다. 자유경제 주의를 추구하는 더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자유시장 경제에 입각한 미국의 정책을 지지한다. 하지만 미국이 지구촌 패권주의 시각을 더욱 공고히 하려 든다면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위안화가 달러와의 국제통화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미래를 다음 세대가 아닌 바로 우리 세대가 직접 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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