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전후 상황서도 22개국 195만명 연합군 참전
전쟁판도 바꾼 美, 백병전으로 중공군 물리친 튀르키예 등
다리 절단한 장병 “후회 안 해”… 감사함 전하는 한국인 귀감

전쟁은 분리를 낳는다. 부모와 자식 간, 연인 간에 안식처에서 피난처로, 삶에서 죽음으로 영원한 이별을 맞게 한다. 한국은 70여년 전 동족 간 전쟁이 벌어져 많은 이들이 고통받았다. 3년여에 걸친 비극으로 국군 62만여명, 유엔군 15만여명 등 총 77만여명이 전사, 부상, 실종됐다. 이재민은 1000만여명에 달했다. 가족을 잃거나 헤어진 사람들은 지금도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고 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반도는 종전이 아니라 현재 정전 중이다. 본지는 정전 70주년을 맞아 6.25 전쟁 발발부터 정전까지 주요 과정을 짚어보고, 참전 용사들이 전하는 전쟁의 실상을 통해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전쟁 당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미군, 유엔군에 감사하단 마음을 가졌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 대국의 면모는 불가능했으리라 짐작한다.”

故 최연홍 시인은 6.25 전쟁 발발 당시 9세였다. 최 시인은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살면서 서울이 북한군에 장악된 모습부터 1950년 9월 28일 유엔군에 탈환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가 쓴 6.25 전쟁 회고록은 유엔군에 대한 감사로 마무리됐다.

올해는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3주년,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70주년 되는 해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에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조국을 위해 싸운 참전용사들과 이역만리 타국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유엔군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엔 참전국의 활약상

6.25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전쟁으로 기록됐다. 전투 병력, 장비 등을 지원한 16개국과 병원선‧의료진‧의약품 등을 지원한 6개국을 합해 22개국 195만 7733명이 참전했다. 38개국은 물자지원으로 도왔다.

1950년 7월 5일 미군 제24사단 선두 부대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경기 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격전을 벌였다. 미국의 육해공군은 오산 전투를 시작으로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미군은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 영하 37도에 이르는 혹독한 추위 속에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낸 장진호 전투, 민간인과 군인 약 20만명을 철수시킨 흥남철수작전 등으로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출처: 플래닛미디어)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출처: 플래닛미디어)

호주는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참전했다. 호주군은 1951년 10월 3일부터 일주일간 중공군과 격전을 벌인 마량산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다. 매년 경기 연천군 태풍전망대에서 호주군 마량산 전투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북베트남과의 전쟁으로 전력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보병대대급 부대를 파견했다.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중장이 이끈 특수 임무 대대는 1951년 2월 지평리 전투에서 활약했다.

튀르키예는 미국, 영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1950년 11월 군우리 전투에서 패배했던 튀르키예군은 김량장과 151고지 전투로 명예를 회복했다. 튀르키예군은 이 전투에서 백병전으로 중공군 474명을 물리쳤다. 튀르키예 제1여단은 1951년 미국 대통령 부대 표창을, 1952년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다.

흥남철수작전 (출처: 위키백과)
흥남철수작전 (출처: 위키백과)

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상황을 복구하는 중에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지원 의사를 밝혔다. 태국은 전쟁 초반에 쌀 4만톤을 원조한 뒤 육해공군 전투부대를 모두 파병했다. 태국군은 포크찹(Pork Chop) 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백병전과 역습으로 물리쳤다. 이 덕에 태국군은 ‘리틀 타이거(아시아의 작은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스는 6년이 넘는 내전이 끝난 직후 장병 1263명으로 구성된 최정예부대를 우리나라에 파병했다. 그리스대대는 이천 부근 381고지 방어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리스군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경기 여주시에 세워져 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한 나라다. 에티오피아의 ‘강뉴(Kagnew) 부대’는 6.25 전쟁 동안 치러진 253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전고를 울렸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귀국 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한국촌’을 조성했다. 지난 2006년 수도에 6.25 전쟁 참전 기념탑이 세워졌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과 국군 (출처: 국방부)
6.25 전쟁 당시 유엔군과 국군 (출처: 국방부)

이외에 영국은 연인원 5만 6000명이 참전해 1078명이 전사, 2674명이 부상, 179명이 실종하는 등 총 4909명이 피해를 봤다. 캐나다는 군인 2만 6791명이 투입돼 전사자 516명, 부상자 1212명, 실종자 1명이 발생했다. 필리핀 참전 군인 7420명 중 전사자는 112명, 부상자는 299명, 실종자는 16명이다. 네덜란드는 5322명이 참전해 전사자 120명, 부상자 645명이, 콜롬비아는 5100명이 투입돼 전사자 213명, 부상자 448명이 발생했다. 뉴질랜드는 3794명이 참전해 전사자 23명, 부상자 79명, 실종자 1명이, 벨기에는 3498명이 투입돼 전사자 99명, 부상자 336명, 실종자 4명이 발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826명이 투입돼 36명이 전사했다. 룩셈부르크는 100명 참전해 2명이 전사하고 13명이 부상했다.

인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독일은 의무 부대를 보내왔다.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싸운 유엔 참전용사와 유족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찾아 전사자명비를 바라보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022.9.29.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싸운 유엔 참전용사와 유족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찾아 전사자명비를 바라보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022.9.29.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싸울 것”

유엔 참전용사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잘 알지도 못했던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무릅썼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호주 출신 에드먼드 윌리엄 파킨슨은 1951년 뉴질랜드 육군에 입대해 포병대 전방 관측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1953년 전쟁 중 포탄에 맞아 오른쪽 다리를 다치고 왼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그는 지난 2019년 한국전쟁유업재단과의 인터뷰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다리를 잃게 된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하겠다”고 답했다.

미국 텍사스 출신의 제임스 틸포드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북한군을 북쪽으로 몰아내 남한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목표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틸포드는 중공군의 수류탄이 얼굴 쪽으로 터져서 다쳤다. 그는 지난 2007년경 한국을 방문해 아이들이 웃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떠올렸다. 틸포드는 “미국에 있는 한국인이나 한국에 있는 한국인 상관없이 거리를 걷다가 만나면 모두 감사 인사를 한다”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에드먼드 윌리엄 파킨슨 인터뷰 (출처: 국가보훈부 유엔 참전용사 디지털 아카이브)
에드먼드 윌리엄 파킨슨 인터뷰 (출처: 국가보훈부 유엔 참전용사 디지털 아카이브)

튀르키예인 벨리 아타소이는 의료부대에서 의료팀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부상자들에게 응급조치를 한 뒤 수송차에 실어 후송하던 중 미군과 함께 중공군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는 70년 전 포로 생활의 악몽을 아직도 꾼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한국에 목숨을 바치고 피를 쏟았다. 한국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우리 또한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고마움 전하는 한국인들

6.25 전쟁은 어느덧 70년 전 사건이 됐다. 생존한 참전용사들 대다수는 90세가 넘는 고령이 됐다. 유엔 참전용사에게 감사를 표한 사례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들의 희생을 잊어선 안 된다는 점에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난해 4월 미국 스타벅스에 근무하는 한국인 여성이 유엔군 참전용사의 커피값을 대신 낸 뒤 “저희를 위해 싸워주셔서 감사하다(Thanks for serving for us)”고 인사한 영상은 화제가 됐다.

라미 현 작가는 지난 2017년부터 6년간 미국, 영국 등 참전국을 방문해 현재까지 1700여명의 참전용사를 촬영했다. 그는 촬영한 사진을 액자에 담아 참전용사에게 선물하고 있다. 비용을 내겠다는 참전용사에게는 “이미 오래전에 더 많은 것을 지불했다”고 말하며 거절한다. 그는 현재도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국내외 참전용사를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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