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미국 미주리대 역사학과 명예교수 척 코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More than just a game)’이란 책에서 축구의 위대함에 대해 설명했다. 축구 이야기를 담은 책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탄압이 극심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악명 높은 로벤섬 수용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이 축구를 함으로써 자유와 열정, 성취감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며 인간의 가치를 배우고 실천해 흑백 충돌 없는 평등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인 축구의 참된 의미는 인종, 체제, 이념, 규모 등과 관계없이 지구촌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기회를 제공하는 스포츠라는 점이다. 펠레와 마라도나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전에는 모두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선수생활을 했다는 공통성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스타 리오넬 메시는 어린 시절 고질적인 천식병을 이겨내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조그만 나라도 크기에 상관없이 강대국과 경쟁할 수 있는 종목이 축구이기도 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사이에 낀 우루과이는 월드컵을 2차례나 우승한 축구 강국이며, 대한민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전 국민이 태극전사가 돼 사상 처음으로 세계 4강에 올랐으며,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아시아 국가 첫 8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축구의 ‘아름다움’을 얘기한 것은 17일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앞으로 각국 회원국을 상대로 한 선거 전략과 활동에서 축구의 본질적인 특성을 핵심적인 키워드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미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 회장을 비롯해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 ‘하얀 펠레’로 불렸던 코임브라 지코(브라질), 마라도나(아르헨티나) 등이 출사표를 던진 상황에서 정몽준 회장이 공감과 지지를 얻기 위해선 대의명분을 잘 세우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FIFA는 111년 역사상 지금만큼 존폐의 위기에 처한 적이 없다. FIFA 부회장 등 재무 관계자들이 부패와 탈세 등으로 스위스와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으며, 5번이나 연임된 제프 블래터 회장은 회장직 사임을 발표했다. FIFA의 부패 상황이 카타르와 러시아 등 2018, 2022 월드컵 유치국으로까지 비화되면 걷잡을 수 없는 쓰나미 사태로까지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FIFA의 부패문제는 블래터 회장 전임인 아벨란제 회장 시절부터 거론됐던 수십 년간 해묵은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FIFA 부회장 시절 정몽준 회장은 FIFA의 재정 투명성과 개혁 등을 요구해 아벨란제 회장 등으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았다. 한·일 월드컵을 유치하는데 큰 공을 세운 정몽준 회장이 FIFA 부회장에서 밀려난 것은 아벨란제, 블래터로 이어지는 회장단의 연대 세력 때문이었다.

FIFA는 가입 회원국 규정의 느슨한 조항 때문에 UN 회원국(193개국)보다 많은 209개국의 회원국을 보유, 세계 최대 스포츠 단체이다. 축구의 세계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지정학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유럽 서방국 등은 블래터 체제의 FIFA를 부정과 비밀주의, 정실 인사로 점철된 폐쇄적인 집단으로 낙인찍고 현재의 파행사태는 수십 년간 비행의 결과였다고 못 박았다. 선진국이 주축인 이들 국가는 FIFA가 규칙을 지키고 투명한 재정운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블래터 회장 체제를 지지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국가들은 현재의 문제를 음모이론, 정치화, 희생화 등으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저개발국가인 이들 국가는 국가 주권과 불간섭주의를 내세워 선진국과는 다른 관점을 내세운다. 저개발국가들의 이러한 관점은 블래터 회장에게는 장기체제에 대한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정몽준 회장은 선진국 등에서 쏟아지는 개혁에 대한 요구와 함께 저개발국가들의 참여 기회 확대에 대한 목소리도 함께 담아서 선거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FIFA가 지정학적인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진정한 FIFA 개혁과 변화의 필요성을 축구를 사랑하는 지구촌의 다양한 인종들에게 호소하며 갈등을 접고 희망과 단결을 이끄는 축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라는 본질적인 요소를 부각시켜야 한다. 내년 2월 26일 스위스 FIFA 본부에서 열리는 회장선거결과는 209개 회원국을 얼마나 감동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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