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그동안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그랜드 슬램(Grand Slam)’을 달성하는 선수들을 많이 봤다. 먼저 국내를 살펴보면 피겨 김연아, 유도 이원희, 레슬링 심권호 김현우, 양궁 박성현 등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이들은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 등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랜드 슬래머로 이름을 올렸다. 국내서 세계 1인자가 되기가 어려운 각 종목의 특성과 환경 등을 고려해 아시안게임,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선수들에게 그랜드 슬래머 타이틀을 언론들이 비공식적으로 부여했다. 의심할 바 없는 최고의 선수라는 의미였다.

해외서도 그랜드 슬래머는 다양한 종목에서 최고의 의미로 사용했다. 미국 야구서 그랜드 슬래머는 홈런타자를 말하며, 럭비서는 그랜드 슬램 투어에서 럭비의 본고장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팀에게 모두 승리한 남아공,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3개국팀에게 그랜드 슬래머 타이틀을 붙이기도 한다. 그랜드 슬램을 많이 남발하다 보니 평가절하된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골프와 테니스는 그랜드 슬램을 값어치 있게 사용한다. 골프와 테니스는 한 해에 4대 메이저대회를 연속 석권한 선수만 그랜드 슬래머로 인정을 받는다. 워낙 달성하기가 어렵다보니 골프와 테니스의 그랜드 슬래머는 당대뿐 아니라 전 시대에 걸쳐 최고 선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만큼 가치가 다른 것보다 월등히 높다.

골프에서 1930년 바비 존스가 첫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이후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으며 테니스에서는 미국의 돈 버지가 1938년 첫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이후 남녀 20여명이 이름을 올렸다. 골프보다 테니스에서 그랜드 슬래머가 많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 단식뿐 아니라 복식, 혼합 복식 등에서 우승을 해도 인정을 하기 때문이다.

원래 그랜드 슬램은 1800년대 카드게임 브리지에서 모두 승리한 경우 사용했던 용어였으나 1930년대 골프와 테니스에서 주요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바비 존스와 돈 버지 등이 등장하자 최상의 선수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알랜 굴드와 같은 미국 스포츠 칼럼니스트 등이 언론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한 해에 연속해서 4대 메이저 우승을 차지하는 선수들이 잘 나오지 않자 그랜드 슬램 용어는 좀 더 세분화된 형태로 발전했다. ‘논 칼렌더 그랜드 슬램’ ‘커리어 그랜드 슬램’ ‘슈퍼 그랜드 슬램’ ‘골든 그랜드 슬램’ 등으로 다양화, 세분화된 것이다. ‘논 칼렌더 그랜드 슬램’은 한 해가 아닌 두 해에 걸쳐 4대 메이저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이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선수 생활 동안 4대 메이저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슈퍼 그랜드 슬램’은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가 메이저 대회에 버금가는 큰 대회에서 추가적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이며, ‘골든 그랜드 슬램’은 올림픽에서 추가적으로 우승을 한 것을 이른다.

지난 주말 올 시즌 네 번째 메이저대회인 LPGA 리코 브리티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박인비는 LPGA 역사상 7번째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박인비는 US 여자 오픈에서 2승,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1승,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3승을 챙겼고, 이번 대회 우승으로 5대 메이저대회 중 4개 메이저대회를 최근 14개 메이저대회 출전에서 차례로 석권했다. 역대 LPGA투어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6명뿐이었다. 1957년 루이스 석스(미국)를 시작으로 두 차례 그랜드슬램을 이룬 미키 라이트, 팻 브래들리, 줄리 잉스터(이상 미국)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휩쓴 캐리 웹(호주),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까지 모두 ‘전설’로 통하는 선수들만이 달성했다.

소렌스탐을 우상으로 삼아 골프에 입문한 그는 이미 소렘스탐에 못지않은 세계 골프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레전드 급’으로 평가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골프룰과 경기를 잘 모르는 이도 이제는 그의 위대성을 제대로 이해할 것이다. 세계 골프사에 길이 남을 명품 선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스포츠팬뿐 아니라 전 국민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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