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어떻게 하면 피교육생들에게 부담주지 않고 질 좋은 교육이 되게 할 수 있습니까?” 관선 단체장 시절인 80년도 초에 처음으로 시장·군수반 장기 합숙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후 내무부지방연수원장이 지도교수를 초빙하고서 던진 질문이다. 이 말에 당시 외래 지도교수였던 노(老)교수가 답했다. “피교육생들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게 만들면 됩니다.” 너무나 간단한 답변이라서 원장은 “그렇습니까? 허, 허” 하고 웃음 지었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명답이었다.

오십대 줄에 있는 고위공직자들이 집을 떠나 1년이란 긴 세월동안 합숙교육을 하게 되니 그 연수생들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답답할 터에 몸이라도 편하게 해주라는 뜻이었다. 당시 피교육생들은 현직에서 장기간 시장·군수를 지냈던 쟁쟁한 인물이었는 바, 아무리 그렇더라도 다스리는 주체보다는 당하는 객체의 입장에 있었으니 불리하고 피곤했다. 어쨌든 피고용인, 피지배층처럼 ‘피(被)’자 달린 말치고 스스로에게 주체적 선택권이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현상은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의 관계가 확연히 드러나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대한민국헌법 제1조 제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돼 있지만 개별적 조항이나 법률에서 국민 개인은 피치자로서 다스림을 받는 존재인 것이다. 정치지도자들이 치자이고, 국민은 피치자 입장에 있으니 허구한 날 ‘좋은 정치’의 과실을 먹어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오랜 기간 답답한 세월들이 흘러갔다.

군부독재가 끝나고서 “이젠 좋은 세월이겠지” 국민은 고대했다. 하지만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진 채, 정치가들은 구실만 위민(爲民)이었지 언제나 당리당략을 좇아 그들만의 리그에 충실하면서 표를 먼저 생각했다. 그 결과로 국민들은 정치를 불신했고 숫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경제난이 가중되고 취업이 힘들게 되자 근래 들어 젊은 청년세대들마저 “취직이 먼저고 먹고살기가 우선이지 정치는 무슨…” 하고 손사래를 치는 현실이 돼버렸다.

어느 쪽에서 정치가 나라와 국민을 살리는 최지름길이라고 말하면, 다른 편에서는 정치는 허상(虛像)이거나 쓸데없는 거라 반론한다. 현대 민주국가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는 공기처럼 필수불가결한 것임에도 그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나 대접을 받지 못하는데다가 심지어 필요악으로까지 내몰리고 있으니 혼란스러운 시대상이다. 그렇다면 ‘정치란 과연 무엇일까?’ 자문해보지만 그 답은 쉬우면서도 어렵고, 어려운 가운데도 단순 명쾌하게 받아들여진다.

정치(政治)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상세히 풀이하면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그것이 정치의 사전적 의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주권(主權)을 가지고, 모든 권력의 발원지(發源地)라 할 수 있는 국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도록 정치하면서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함인데, 그 근본을 모르는 바 아니나 현실적으로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정치인 빼고는 그리 많지가 않다. 그럼에도 아직도 정치에서는 보수, 진보에 갇혀있다. 양 이념이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길일 텐데, 고착화돼 있는 게 문제다.

세월은 시대를 변하게 한다. 20세기적 사고나 행동으로서는 21세기를 살아가지 못하는 법이어서 개인과 조직이든, 국가·사회든 발전을 담보하는 환경에 맞게 적응하는 게 요체(要諦)이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정치인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독단적인 정치철학을 가지기 일쑤다. 보수적 견지를 이으려 끊임없이 획책하고, 또 진보세력들은 과거의 정통마저 훼손하면서까지 선동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도 성장했으니 이념·사상에 휘둘리지 않는 시대로 변해야 한다. 지금쯤은 건강한 정치가 자리 잡을 때도 됐고, 정치가 앞으로 만인의 신뢰 속에서 국민생활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선진정치로 나아가는 것도 맞다.

수구세력이 더 이상 변화를 거부해 사회현상을 왜곡시키는 무능 집단이 돼서도 안 될 것이고, 진보세력들도 현실적 문제에 치중하되 사회를 순차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또 국민들은 정치에서 보수, 진보 양자는 순치(脣齒) 관계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무조건 보수는 구태이고 진보는 선동이라는 편협을 넘어 바른 정치의 쓰임새로 재생돼 국민 편익과 국가·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채찍질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가 이념의 갈등과 혼란을 잠재우고,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일에 매진해 국민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게 만들어주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정치를 신뢰하고 또 정치인을 환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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