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지난 두 달간 외출조차 꺼려할 정도로 메르스 사태는 국민의 마음속에서 국가 재난사태로 번져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가뜩이나 오랫동안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 기업이나 상인들이 힘든 판에 관광하기 딱 좋은 계절에도 국내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마저 뚝 끊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지난해 6월에 103만명에 이르렀던 외국인 관광객 수가 올해 같은 기간에는 64만명으로 급감했고, 7월에도 호전현상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7월 말경에 접어들어 메르스 사태가 다소 안정화 기미를 보이자 국내 관광이 이어지고 있어 다행스럽다. 중국 대형 여행사는 향후 150일 안에 10만명의 중국 관광객을 한국에 보내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이에 따라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말까지 단체 여행객 3000명이 한국을 찾기로 했다는 보도는 비단 상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중국인들이 뉴스를 통해 한국 메르스 사태를 주시하다가 사실상 종결됐다는 보도에 한국관광을 재개했다.

가끔씩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는 1년에 두세 번 정도 외국 관광을 떠나는 편이지만 최근에는 중국 자유여행을 즐기고 있다. 저렴한 경비로 중국의 역사·문화 도시를 탐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관광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주 느끼는 바이지만 중국, 일본과 비교해서도 국내의 관광자원이나 환경은 그렇게 탐탁하지가 못한 실정이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정부의 관광시책도 획기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그동안 전국 각 지역에서 사시사철 축제가 많이 열리다 보니 지방자치단체가 관광지 일대에 신경을 써서 안내판이나 공중화장실, 음식 등 여러 분야에서 좋아졌다. 그만하면 내국인에게는 불편하지는 않겠지만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 본다면 숙박시설, 구경거리 등에서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니 보완하거나 개선할 여지가 많다. 한때 중앙행정기관에서 문화관광 기반 정비사업을 추진했던 필자로서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몇 가지를 개략적으로 피력해본다.

국민의 정부 때인 1999년 9월 초, 김종필 총리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서 한일총리 회담을 했다. 회담 끝에 여담으로 “한국인들이 일본 관광을 많이 하는데 왜 일본인들은 한국관광을 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일본 총리가 대답하기를 “한국에 가면 관광지 안내판, 음식, 화장실 시설이 열악한 데다가 숙박시설이 마땅치 않아 일본인들이 한국 관광을 기피한다”고 했다. 그 당시 국내 관광지 여건으로 봐서 꼭 맞는 지적이었다.

그게 계제(階梯)가 되어 1999년 하반기에 관광지 기반시설 정비 사업이 추진된바, JP 총리가 중앙부처의 기능을 모르겠는가마는 이 과제는 국무회의를 거쳐 문화관광부 대신에 행정자치부에 맡겼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재정경제국에서 지역개발업무를 총괄하던 필자에게 총리 지시사항이 떨어졌고, 전국 유명 관광지를 조사해서 22개소를 선정하고 2000년부터 3개년 계획으로 1000억원의 특별교부세와 지방비를 들여 ‘문화관광 기반정비사업’을 펼치게 됐던 것이다.

세부사업으로는 관광안내판에 한글을 비롯해 외국어(영어, 일본어, 중국어) 명기, 공중화장실, 음식점 및 소공원 정비, 진입도로 확장 등 관광지에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기반시설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꼭 필요한 내용들이었다. 정부에서 70%를 지원하고 시도와 시군이 15%씩 부담하는 사업인지라 지방자치단체에서 요긴한 사업으로 이 사업을 선호했고, 이때 완성된 것이 영주 부석사와 소수서원의 주차장과 소공원 조성, 안동 봉정사 진입도로(4㎞) 개설 등이었다.

이 사업이 추진되기 전인 2000년 이전에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를 가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현재 부석사 주차장, 공중화장실과 공원 등 주변 시설이 그때와 비교해 얼마나 잘돼 있는지를 알 것이다. 변변한 화장실이 없고 몇 대밖에 주차할 수 없는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도착하랴 치면 승객들이 급하게 내려서는 언덕배기 아무 곳에다 용변을 보던 실로 형편없었던 곳이었다. 또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 봉정사를 갈 때에 비포장도로여서 먼지 폴폴 날리던 길이었는데, 관광지 주변 정비사업 덕택에 2차선 도로가 말끔히 포장됐던 것이다.

그 후 1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 생각해도 관광지 안내판, 화장실, 주차장, 진입로 등 시설 정비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위해 좋은 사업이다. JP의 뛰어난 선견(先見)이 품격 있는 문화관광지의 시초를 만들었으니 지도자나 정책가들의 책임 있고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이 정말 중요하다. 최근 들어, 박근혜 정부에서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국내 유인정책을 강화하고 있는바, 서울의 백화점 쇼핑 위주에서 벗어나 볼거리. 쉴 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하려면 전국의 명성 있는 문화관광지 기반 정비사업을 제대로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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