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 전북 고창,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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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전라북도 서남단에 위치해 있는 고창은 동남쪽 노령산맥을 중심으로 전라남도와 경계를 이룬다. 북쪽의 일부는 곰소만을 넘어서 부안군에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바다를 접하고 있다. 또한 고창은 군 한 가운데 방장산(方丈山)에서 발원한 인천강(仁川江)이 흐르고 있어 비옥한 평야가 형성돼 있다. 이처럼 고창은 산과 강·바다·평야 등 천혜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어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생명의 고장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고창을 답사하며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라는 어느 유행가의 가삿말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고창을 생각하며 전라도와 경상도에 얽힌 가삿말이 생각난다는 게 다소 엉뚱하게 들린다. ‘고창이 장터와 연관이 있나’라는 의문도 들 수 있다. 다름 아닌 ‘고창엔 있어야 할 건 다 있다’라고 말하고 싶어서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걸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곳, 전북 고창이다.

선운사, 구름 속에서 도를 닦는 곳

▲ 선운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노래 ‘선운사’ 가삿말 - 송창식

천오백년 고찰 선운사는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 검단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단스님의 선운사 창건 관련에는 여러 가지 설화가 등장한다.

▲ 선운사 대웅보전(보물 제290호) ⓒ천지일보(뉴스천지)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고 있었다. 그 무렵 마을에 심한 눈병이 돌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못에 숯을 한 가마 갖다 부으니 눈병이 씻은 듯이 낫게 됐다. 이를 기이히 여긴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숯과 돌을 못에 갖다 부었고,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고, 이 터 위에 선운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설화로는 이 지역에 전쟁 난민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가을이 되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쳤다고 한다.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고 불렀다. 선운사가 위치한 곳은 해안과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염전이 일궈졌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염전을 일궈 재력을 확보해 사찰을 창건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하여 절 이름을 ‘선운’이라 지었다고 한다. 답사팀이 선운사를 찾은 날은 마침 구름이 선운산을 뒤덮고 있어 구름 속에 자리한 듯했다. 검단스님의 오묘한 표현에 중생의 깨달음은 더디나, 스님도 구름이 감싸고 있는 선운산의 경치에 매료되지 않았을까.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을 정도로 장엄한 불국토를 이뤘다.

또한 선운사는 오랜 역사와 함께 대웅보전(보물 제290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제1752호),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79호), 도솔암 마애불(보물 제1200호) 등 많은 불교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선운사는 동백꽃 군락지로도 유명해 많은 시인 묵객들에게 영감을 주어 사랑 받는 명소이기도 하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 ‘선운사 동구’ 모두 - 서정주

기암바위와 푸르름이 조화를 이룬 선운산

고즈넉이 자리잡은 선운사(禪雲寺)를 감싸 안은 선운산. 선운산은 고창군 아산면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336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본래 그 이름은 도솔산(兜率山)이었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로 인해 선운산으로 고쳐 불리게 됐다. 주변으로는 경수산(444m)·천마봉(284m)·국사봉(346m)·낙조대·배맨바위 등이 우뚝우뚝 솟아 있어 사계절 뛰어난 절경을 이룬다.

▲ 선운산 전경. 협곡을 이루고 있는 형태 ⓒ천지일보(뉴스천지)

일행은 선운사를 지나 도솔암으로 향했다. 도솔암 근처에 도착하면 천연기념물 제354로 지정된 장사송(소나무)을 볼 수 있다. 장사송 뒤쪽의 기암절벽에는 굴이 하나 있다. 바로 진흥굴이다. 진흥굴은 평소 불도에 관심이 많았던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승려가 된 후 불도를 닦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 진흥굴.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승려가 된 후 불도를 닦았다고 전해진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조금 더 걸으니 바로 도솔암이 눈에 들어왔다. 찜통 같은 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일단 시원한 약수부터 한 잔 떠 마셨다. 도솔암에는 동불암지에 부조로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이 유명하다. 전체 높이 15.6m, 폭 8.48m로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은 고려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여래좌상의 얼굴을 묘사하자면 가느다란 실눈과 유난히 우뚝 솟은 코, 일자형으로 꽉 다문 입술. 화산암의 특성으로 인해 섬세하고 부드럽게 조각됐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나타내야 할 것들은 충분히 표현된 듯하다.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주름, 무릎에 가지런히 놓인 두 손, 가부좌 튼 자세, 연꽃무늬를 새긴 계단 모양의 받침돌까지 암벽에 나타나 있다.

▲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1200호) ⓒ천지일보(뉴스천지)

마애여래좌상의 명치 끝에는 검단선사가 쓴 비결록이 있었던 감실이 있다. 조선 말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머리에 ‘전라도 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 비결록은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고 전한다.

도솔암을 거쳐 천마봉을 찾아 올랐다.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기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보이는 해발 284m의 천마봉. 천마봉에 오르니 정면으로 내원궁과 동불암지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사방 곳곳에서 형체를 드러내고 있는 기암바위들은 절경을 연출해낸다.

▲ 선운산 천마봉 ⓒ천지일보(뉴스천지)

선운산은 중생대 백악기(약 1억 3500만 년~6500만 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난 화산암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인지 바위의 생김새가 역동적이며, 무언가 흘러 내릴 듯한 협곡형태의 모양도 생성돼 있다. 과연 선운산은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한 비경을 자랑한다.

화산암은 용암이 지표에서 냉각될 때 포함돼 있던 가스가 빠져 나가면서 곳곳에 구멍이 생겨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풍화작용을 겪은 화산암은 흙이 쌓이고 쌓여 가스로 인해 생겨난 구멍이 메워지게 된다. 그 자리에 씨앗이 날아들어 뿌리를 내리고, 바위에서 한송이 꽃이 피게 된다.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조형물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선운산의 바위들은 끈질긴 생명체들로 똘똘 뭉쳐져 있는 듯하다.

천마봉을 지나 다음 코스로 이어지는 곳은 낙조대이다.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해일몰이 일
품이라 하는데 답사팀은 아쉽게도 직접 감상할 순 없었다. 하지만 꼭 일몰은 아니어도 신록이 찾아든 선운산의 풍경을 즐기기에 낙조대는 부족함이 없다.
▲ 선운산 낙조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그저 여기가 좋사오니…’
 
▲ 도솔암 약수터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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