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시시각각 다른 옷을 입고,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아~!”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산. 영겁의 세월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기암이 장관을 이루고, 이러한 바위 하나하나가 모여 만 가지 형상을 이뤄 ‘만물상(萬物相)’이라고 불리는 곳.

보는 장소와 각도에 따라 가지각색 풍경을 자랑해 멀리서 보아도 좋고, 가까이에서 보면 더 좋은 만 가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가야산 만물상.

지난 6월 18일, 마루대문 답사팀은 가야산 산신과 천신의 사랑이 빚어낸 아름다운 대가야 건국 신화가 전해 내려오는 가야산 만물상을 장장 9시간에 걸쳐 영상과 사진으로, 그리고 눈과 마음에 고이 담았다.

 

▲ 가야산 만물상 ⓒ천지일보(뉴스천지)

가야산 만물상 구간은 가장 아름다운 비경을 자랑한다. 운이 좋아야 전설이 깃든 신비로운 비경을 볼 수 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더라도 만물상만의 매력을 발산하며 힘겹게 산을 오른 이에게 끝내 미소를 허락한다.

가야산은 대륙성 기후로 기온의 연교차·일교차가 매우 커서 날씨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여름에는 지형성 강우로 연강수량이 1100㎜ 이상이며, 하계 집중 현상도 높은 곳이다.

다행히 답사팀이 만물상을 찾은 날은 비교적 좋은 날씨였다. 전날 내린 비로 땅이 약간 젖어 있었지만, 코끝을 스쳐오는 시원한 산바람에 땀 흘릴 겨를 없이 산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가야산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 기암괴석이 산세와 어울려 장관이다. 본지 발행인이 손을 펼쳐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기암괴석이 산세와 조화 이룬 ‘만물상’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형승(形勝)은 천하에 뛰어나고, 지덕은 *해동(海東)에 짝이 없다”고 가야산을 칭송하고 있다.

조선 중기 문신 한강 정구(1543∼1620년)의 <가야산기행문>에는 “유람객의 구경거리가 되는 산의 훌륭한 경치는 인자(仁者)로 하여금 산의 오묘한 생성의 이치를 보고 자성(自省)하게 하는 것이며, 높은 곳에 오르는 뜻은 마음 넓히기를 힘씀이지 안계(眼界) 넓히기를 위함이 아니다”라고 적고 있다.

그래서 정구 선생은 가야산 정상에 오른 심회를 “천 년 처사의 마음, 말 없는 가운데 합하네”라고 읊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10대 명산에 속하는 가야산에서 최고의 능선이자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만물상.

 

 

 

 

▲ 물고기 입 모양을 닮은 바위 ⓒ천지일보(뉴스천지)

만물상은 수많은 기암괴석이 산세와 어울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한다. 규모부터 남다른 수많은 사람 형상 바위, 동물 형상 바위 등이 산세를 더욱 웅장하게 만든다. 이 기암들이 없는 만물상은 상상 조차 안 될 정도다.

만물상 구간(백운동탐방지원센터~상아덤, 2.8㎞, 2시간 20분)은 초입부터 경사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큰 오르막과 내리막을 일곱 차례 반복해야하는 험준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 위에 놓인 바위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데, 영겁의 세월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다행히 이곳 바위들은 대체로 둥그스름한 형태를 띤다. 네모 형이라도 결코 뾰족하지 않다. 그만큼 날씨와 체력만 잘 받쳐 준다면 오를 만한 산이 성주팔경 중에 제1경인 만물상이다.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 산이라지만, *녹음(綠陰)이 짙은 여름에는 그 많던 바위가 수풀에 숨었다고 할지라도, 이번에 답사팀이 오른 만물상은 참으로 오를 만한 산이었다.

 

 

 

특히 산 정상에 가까워지면 바위틈에 자란 야생 식물, 고수목 등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바위틈에 뿌리를 내고 자라난 질긴 생명력에 경이로움 마저 느껴진다. 지난 6월 답사팀이 만난 녹음의 가야산은 ‘왜 이제야 왔느냐’며 감춰뒀던 비경을 한껏 내어 보였다.
 

▲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야생화 ⓒ천지일보(뉴스천지)

기독교 경서인 성경에서 신약 로마서 1장 20절에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기록돼 있다.

기자는 만물상을 오른 순간 창조주가 만든 만물 앞에서 다시 한 번 인간의 나약함을 느꼈다. 대자연 앞에 서니 어느새 근심과 걱정,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마음은 차분해졌다.

가야산 여신과 하늘신이 만난 ‘상아덤’
 

▲ 녹음의 가야산에 운무가 끼어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가야산은 대가야국의 시조설화가 서려 있는 산이다. 예부터 *해동(海東)의 10승지 또는 조선 8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특히 만물상 정상인 ‘상아덤’에는 가야산 여신인 산신(山神) 정견모주(正見母主)와 하늘신인 천신(天神) 이비가지(夷毗訶之)가 노닐던 곳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상아덤의 어원은 상아는 ‘여신’을 일컫는 말이고, 덤은 ‘바위’를 지칭해 ‘여신이 사는 바위’라는 의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최치원이 저술한 <석이정전>에 상아덤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가야산 산신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러 믿는 여신이었다.

정견모주는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천신 이비가지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상아덤에 내려앉았다.

정견모주와 이비가지는 상아덤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이후 옥동자 둘을 낳았다. 첫째는 아버지인 이비가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붉었으며, 아우는 어머니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그래서 첫째는 ‘뇌질주일(惱窒朱日)’, 둘째는 ‘뇌질청예(惱窒靑裔)’라 이름 붙였다.

후에 첫째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인 ‘이진아시왕’이 됐고, 둘째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됐다.


답사팀이 상아덤에 오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답사팀을 반겨주기라도 한 것일까. 상아덤 앞에 다다르자 처음 느껴보는 신비로운 바람결이 온 몸을 스쳤고, 우리는 높은 산 위에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 가야산 만물상 정상의 상아덤(여신이 사는 바위) ⓒ천지일보(뉴스천지)


*형승(形勝)-지세 또는 풍경이 뛰어남
*해동(海東)-우리나라를 발해의 동쪽에 있다는 뜻으로 일컫던 이름
*녹음(綠陰)-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나 수풀
*해동 10승지(정감록에 기록)-풍기 예천, 안동 화곡, 개령 용궁, 가야, 단춘, 공주 정산 마곡, 진천 목천, 봉화, 운봉 두류산, 태백

▶이어서
고령 중심의 대가야(大伽倻), 독자적 문화 형성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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