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 하늘이 내린 재상 서애 류성룡 ‘징비록(懲毖錄)’ 참혹한 전쟁 다시 일지 않길-②
[글마루] 하늘이 내린 재상 서애 류성룡 ‘징비록(懲毖錄)’ 참혹한 전쟁 다시 일지 않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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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영웅이 난다 했던가(亂世英雄). 임진왜란(1592~1598) 7년의 전란 중 조선을 구한 영웅들을 만났다. 왜군과 맹렬한 전투를 펼치며 전세를 역전시켰던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 각 지역에서 일어났던 의병들이 그러하다. 그중 임진왜란을 논하면서 절대 빠져선 안 될 인물이 있으니 바로 조선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 선생이다. 자신의 목숨을 건 파격적 인사 단행으로 왜의 침입에 대비했던 그의 뛰어난 선견지명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충무공 이순신과 같은 영웅을 어찌 만날 수 있을까. 왜란 당시 영의정과 4도 도체찰사(전쟁 중 의정이 맡는 최고의 군직)를 겸하여 슬기롭게 국난을 극복했던 그의 흔적을 찾아 안동하회마을에서 마루대문을 활짝 연다.


유교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 안동하회마을

난세영웅(亂世英雄) 서애 류성룡
▲ 조선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

류성룡은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아버지 류중영과 어머니 안동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21세에 이르러 당대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에게 나아가 성리학을 배웠으며, 동문수학했던 학봉 김성일과 함께 이황의 양대 제자로 꼽히고 있다. 이황은 제자 류성룡을 가리켜 “이 사람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며 그가 대성할 인물임을 알아보고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 했던가. 류성룡은 1591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왜란의 조짐을 감지하고 선조에게 건의를 올려 이순신을 정읍 현감에서 전라 좌수사로, 권율을 형조정랑에서 국경지대의 요충지인 의주 목사로 천거했다. 견제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애가 단행했던 파격적인 인재등용은 패색이 짙던 전란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류성룡의 뛰어난 혜안(慧眼)과 선견지명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어찌 두 영웅을 만날 수 있었을까. 이 땅을 우리가 어찌 밟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무엇보다 당파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철저히 전란에 대비했던 그의 빛나는 업적은 명재상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징비록을 기록했던 옥연정사 ⓒ천지일보(뉴스천지)

1598년 류성룡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옥연정사에 은거하며 징비록을 비롯한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 정진하다가 1607년 고향에 있는 농환재 초당에서 66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병산서원

▲ 류성룡이 후학을 양성하던 병산서원(사적 제260호) ⓒ천지일보(뉴스천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위치한 병산서원(屛山書院)은 하회마을에서 반대 방향으로 4㎞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곳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이 서원은 고려 말 풍산류씨를 교육하던 풍악서당에서 비롯됐으며, 1572년 류성룡이 학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 병풍 모양의 아름다운 병산이 있는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산수가 없으면 감정을 순화하지 못하여 사람이 거칠어진다. 산수란 멀리서 대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큰 포부를 갖게 하여 인물을 만들어내고, 가까이 대하면 심지를 깨끗하게 하고 정신을 즐겁게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까. 병산서원은 성리학적 가치관이 잘 반영된 건축구조로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뛰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유학을 익혔던 유생들은 자연을 벗 삼아 심신을 달래며 큰 포부를 가졌으리라 상상해 본다. 병산서원을 자세히 둘러보니 비로소 안동에서 훌룡한 인재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 병산서원의 만대루 ⓒ천지일보(뉴스천지)

병산서원의 솟을대문인 복례문(復禮門)을 지나면 서원의 백미로 꼽히는 만대루(晩對樓)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다. 만대루의 ‘만대’는 당나라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보름달 빛이 병산과 서원에 내려앉으면 신비롭고 오묘한 절경을 이루게 됨을 표현한 듯하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만대루는 덤벙주초와 함께 18개의 통나무 기둥이 떠받들고 있으며, 2층 누마루는 사방이 탁 트여 있어 자연과 일치하고자 하는 성리학적 이념이 반영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건축자의 의도대로 누각의 텅 빈 공간은 건물 밖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해 낸다.

병산서원 앞을 가로막고 있는 병산의 절벽과 강물은 만대루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 사이사이로 들어와 7폭 병풍에 그려진 산수화로 승화된다.

만대루에 앉아 잠시 눈을 감으니 큰 뜻을 품은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 만대루에서 마주 보이는 병산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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