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문공은 상군 중군 하군 등 3군의 편성을 마치고 출전 명령을 내렸다. 자신의 병거는 순임보가 이끌게 하고 곁에는 위추를 타게 했다.

문공 5년 봄. 문공은 조나라를 치기 위해 위나라에 통행 허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문공은 어쩔 수 없어 위나라를 멀리 돌아서 황하를 건너 조나라를 공격한 뒤에 위나라를 공격했다.

1월에는 먼저 위나라의 오록을 점령했다. 2월에 문공은 제후와 염우에서 동맹을 맺고 배후의 불안을 없앴다. 위 후가 동맹을 맺자고 요청해 왔으나 문공은 거절했다. 그러자 위 후는 초나라의 지원을 얻으려 했으나 위나라의 대신들은 반대했다. 신하들은 위 후를 쫓아내고 진(晋)나라에 그 뜻을 밝혔다. 도망간 위 후는 양우에서 숨어 살았다.

그 무렵 초나라 쪽에 붙었던 노나라가 위나라의 도읍을 지켜주기 위해 공자인 매를 보냈다. 초나라도 위나라의 구원을 위해 출전했으나 진(晋)나라 군대를 이길 수 없었다.

계속해서 문공은 조도를 포위하고 무찔러 3월 병오 날에 입성했다. 문공은 지난날 조나라 왕이 희부기의 간언을 무시하고 문공을 냉대했던 일과 조나라에서는 대부 이상이 아니고는 탈 수 없도록 되어 있던 현을 타고 다니는 자가 무려 300명이나 된다는 사실 등, 이 두 가지 점을 들어 조후를 꾸짖었다. 그리고 희부기의 일족을 보호하도록 전군에 포고령을 내려 그 옛 은혜에 보답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초나라와 송나라의 분쟁이 다시 일어나 초나라 군이 송나라 도읍을 포위했다. 송나라는 곧 진(晋)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문공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몹시 난처했다. 구원군을 보낸다면 반드시 초나라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초나라 성왕에게 지난날 정중하게 대접을 받은 일이 있기 때문에 싸울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송나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은혜를 입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구원 요청을 묵살할 수도 없었다.

문공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자 선진이 나아가 말했다.

“우선 조 왕을 구속하고 조나라와 위나라의 땅을 송나라에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초나라가 이 두 나라를 구하러 간다면 송나라의 포위는 저절로 풀어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공은 선진의 건의를 곧 받아들였다. 결국 초나라 성왕은 포위망을 풀고 돌아갔다.

이러한 진나라 문공의 행동을 지켜보던 초나라 장군 자옥은 몹시 화를 냈다.

“진(晋) 후는 그 옛날 우리 군주로부터 최고의 대우를 받은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초나라의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하다니, 그는 우리나라를 우롱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성왕은 자옥을 꾸짖었다.

“진(晋) 후로 말하자면 19년 동안 고통스런 망명 생활을 겪은 뒤 마침내 귀국한 인물이다. 역경을 물리치고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있다.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하늘의 도움에 의한 것으로 감히 그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없다.”

그러나 자옥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저를 무능하다고 중상하는 무리의 입을 틀어막고 싶습니다. 원컨대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자옥이 계속 버티자 성왕은 화가 나서 적은 군사만 그에게 맡겼다.

자옥은 재빨리 완춘을 사자로 보내 진(晋)나라에 요청했다.

“위 왕을 위나라로 돌려보내고 조나라 영토를 돌려주기 바란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송나라에서 손을 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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