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초나라에서 후한 대접을 받았던 중이는 진(秦)나라의 초청으로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진(晋)나라 혜공이 죽고 자어가 회공으로 등극했다. 조국에서 몰래 찾아온 난지와 극곡이 중이에게 귀국을 종용했다.

결국 진(秦)나라 성왕이 군대를 출동시켜 중이 일행의 귀국은 순조롭게 이어질 수 있었다. 망명한 지 19년 만에 귀국한 중이는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귀국한 문공(文公) 중이는 도망간 회공을 죽였고, 요직에 있었던 여성과 극예 일파의 반란을 진압한 다음 나랏일에 충실히 하고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을 내렸다.

문공 중이와 고난과 즐거움을 함께했던 신하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 또한 컸다. 그러나 포상을 거부하고 물러선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문공은 확고한 자기의 기반을 굳힌 것이다.

문공 2년 봄 진(秦)나라가 진(晋)나라의 영토인 하상에 들어와 진(晋)나라에 피신하고 있던 주나라 양왕을 진(秦)으로 데려와 주나라로 다시 복귀시키려고 했다. 조쇠가 문공에게 건의했다.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왕께서 손수 주왕을 복귀시켜 주 왕실을 받드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진(晋)나라는 주나라와 동성 사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이다가 진(秦)나라에게 기선을 잡히는 날이면 장차 우리나라는 천하를 호령할 기회를 놓치고 말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주왕을 받들어 장래에 대비해야 합니다.”

조쇠의 건의를 받아들여 문공은 3월 갑진날 양번으로 군사를 진격시켜서 온 땅을 포위하고 양왕을 본래의 지위로 복귀시켰다.

다음 달 4월에 진(晋)나라는 양왕의 아우 대를 죽였다. 양왕은 그것을 감사하여 진나라에 하내 땅인 양번을 주었다.

문공 4년 봄 초나라 성왕은 제후들을 모아 송나라의 도읍을 포위했다. 송나라는 진(晋)나라에 공손고를 사자로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선진이 문공에게 건의했다.

“지금이야말로 송나라의 옛 은혜를 갚고 패자가 될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호언도 곁에서 건의했다.

“초나라는 최근에 이르러 조나라를 병합하는 한편 위나라와는 인척 관계를 맺었습니다. 우리 군사가 조, 위 두 나라를 공격한다면 초나라는 그 두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킬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송나라에 대한 공격은 당연히 중지되고 송나라는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 틀림없습니다.”

문공은 장병들에게 출전 명령을 내리고 군대를 상군, 중군, 하군 등 3군을 편성했다.

조쇠의 추천에 따라 극곡을 중군의 장수로 극진을 부장으로 임명했다. 호언에게는 상군을 맡겼고 호모를 부장으로 삼았다. 조쇠는 경에 임명됐다. 하군의 장군은 난지로 삼고 선진을 부장으로 했다. 문공의 병거는 순임보가 이끌고 위추가 곁에 탔다.

부대의 편성을 마치자 진나라군은 작전을 펼쳐 12월에 태행상 동부 일대를 공격했다. 그리고 문공은 조쇠에게 원 땅을 맡겼다.

문공 5년 봄 문공은 조나라를 칠 계획을 세우고 우선 위나라에 통행 허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문공은 어쩔 수 없어 위나라를 멀리 돌아서 황하를 건너 조나라를 공격한 뒤에 다시 위나라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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