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황하의 북쪽을 건너 귀국한 문공은 공이 있는 신하들에게 상을 내리고 그해 겨울 온 땅에서 제후들을 불러 모아 맹세를 주재했다.

문공은 제후들을 거느리고 주나라 왕도로 나아가 왕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실력을 돌아보니 배신자가 많이 나올 것 같았다.

문공은 사자를 주나라 양왕에게 보내 하양으로 나와서 사냥이나 하자고 요청을 했다.

임진날 문공은 제후들을 거느리고 천토에서 양왕을 만났다.

뒷날 공자가 사관의 기록을 읽어나가다가 이 대목을 보고 제후가 왕을 불러냈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을 했다.

정축날에 제후들이 조나라 영토인 허를 포위했다. 그러자 조나라 신하 한 사람이 문공에게 항의했다. “지난날 제나라 환공께서는 맹세의 우두머리가 되셨을 때 동족이 아닌 나라까지도 훌륭하게 보살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공께서는 맹세의 우두머리가 되시자 동성의 동족까지도 멸망시키려 하십니다. 이것은 어찌된 연유입니까? 우리 조나라는 숙진탁의 자손이요. 귀국은 당숙의 자손인즉, 곧 두 나라는 형제의 관계입니다. 제후들을 거느리시면서 형제의 나라를 치신다는 것은 어찌 예의에 벗어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문공은 그러한 사실을 시인하고 조나라의 조백을 복귀시켰다.

진(晋)나라는 그러한 즈음에 종래의 군제인 3군 외에 3행의 군을 편성했다. 그래서 순임보를 중행, 선곡을 우행, 선멸을 좌행의 장군으로 각각 임명했다.

문공 7년에 공은 진(秦)나라 목공과 연합해서 정나라 도읍을 포위했다.

정나라를 포위한 것은 첫째, 지난날 문공이 망명 시절에 그 나라에 들렀다가 냉대를 받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성복 싸움 때 정나라가 초나라를 도왔기 때문이다.

정나라 도읍을 포위한 문공은 숙첨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숙첨은 전에 중이가 정나라에 들렀을 때 문공 자신을 죽이자고 주장한 일이 있었다.

숙첨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나라는 숙첨의 시체를 진나라 문공에게 보내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문공은 화를 풀지 않고 말하였다.

“정나라 왕을 잡지 않고는 내 화가 풀리지 않는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정나라 왕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위기를 벗어나고자 진(秦)나라 목공에게 밀사를 보냈다.

“지금 정나라를 멸망시켜 이익을 보는 것은 진(晋)나라 뿐입니다. 귀국에게는 과연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우리나라를 존속시켜 장래 동쪽을 정벌하심이 진(秦)나라로서는 이익이 아니겠습니까?”

목공은 정나라의 뜻을 이해하고 군사를 철수시켰다. 진(晋)나라 문공도 어쩔 수 없이 군사를 회군시켰다.

문공 9년 겨울에 그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인 양공(襄公) 환(歡)이 그 뒤를 이었다.

같은 해에 정나라 정백(鄭伯)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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