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초나라 장군 자옥은 군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사들을 진격시켰다.

송나라, 제나라, 진(秦)나라 등 네 나라의 연합군을 이끈 문공은 초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초나라 자옥은 패하여 돌아갔다.

주나라에서는 하사품을 보내 문공이 패자인 것을 인정했다.

다시 천토의 왕궁에서 제후들을 불러 모은 맹세의 자리에서 문공이 패자임을 재삼 인정하게 했다.

전쟁은 끝났으나 연합군이 공격한 초나라 군대의 진영에 불타고 있는 불길은 며칠 동안이나 계속됐다. 문공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했다.

측근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해 이유를 물었다.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했는데 무슨 생각 때문에 걱정하십니까?”

“싸움에서 승리한 다음에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은 성인뿐이라고 하오. 범인인 내가 안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오. 무엇보다도 아직 자옥이란 자가 살아 있으니 어떻게 마음 놓고 기뻐할 수가 있겠소?”

성복 전투에서 패한 자옥은 초나라로 돌아가자 성왕은 그가 군주의 뜻을 거스르고 진(晋)나라에 대항한 사실을 들어 엄하게 추궁을 했다.

그 이유로 자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문공이 중얼거렸다.

“내가 밖에서 무찌르고 초나라가 안에서 처리해 준 셈이다. 내외가 호응했다는 결과가 되었군.”

문공은 그제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6월에 진나라 문공은 위나라 군주를 원래의 자리에 복귀시켰다.

임오날 문공은 황하의 북쪽을 건너 귀국했다. 이어서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이 주어졌는데 공로자의 선두에 호언을 내세웠다. 그러자 “성복 싸움에서 승리는 선진께서 세우신 작전이 성공했다고 봅니다만…” 하고 신하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자 문공이 말했다.

“그렇다. 성복 싸움 때 호언은 나에게 지난날의 신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선진은 전쟁에서 승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연 나는 선진의 건의를 받아들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이익만 내세우는 주장인데 반해 호언은 먼 장래까지 말하였다. 한때의 이익이 만세의 공보다도 위에 놓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호언을 선두에 세운 것이다.”

그해 겨울 문공은 온에서 맹세를 주재했다. 가능하다면 제후들을 거느리고 왕도까지 나아가 왕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경우 진(晋)나라의 실력을 스스로 돌아보니 배반자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주나라 양왕에게 사자를 보내 하양까지 나와서 사냥이라도 하자고 요청했다.

임진날 문공은 천토에서 제후들을 거느리고 양왕을 만났다. 뒷날 공자는 사관의 기록을 읽어나가다가 이 대목에 이르러 문공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후의 몸으로 왕을 불러낸다는 것은 잘못이다. ‘춘추’에는 왕이 하양에서 사냥을 했다고 기록이 돼 있는데 그것은 진상을 사실대로 묘사하기를 기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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