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초나라가 다시 송나라 도읍을 포위하자 진(晋)나라가 개입할 움직임을 보였다.

초나라 장군 자옥이 은혜를 모르는 문공이라고 화를 냈다. 초나라 성왕은 오히려 자옥을 나무랐다. 그래도 자옥이 물러서지 않자 성왕은 적은 군사만 그에게 내어주었다.

자옥은 진나라 문공에게 사자를 보내 요청했다. 위후를 돌려보내고 조나라 영토를 돌려주면 송나라에서 철수하겠다고 했다.

그런 요청을 받은 진나라 구범이 말했다.

“우리 군주에게는 두 가지를 양보하라고 요구하고 저희는 한 가지만 양보하겠다니 우리는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 말에 선진이 반대 의견을 냈다.

“예절이라는 것은 사람의 지위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일입니다. 초나라가 요구하는 것은 위, 조, 송 세 나라를 안전하게 이끌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지금의 의견은 그 세 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나라 쪽이 옳지 못하다는 결과가 됩니다. 첫째, 초나라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것은 송나라를 저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선 은밀하게 조나라와 위나라의 두 나라를 전처럼 복귀시켜 그 두 나라를 우리 편으로 만들고 다음에는 사자로 온 완춘을 잡아 가두어 초나라의 비위를 건드려 전쟁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조나라와 위나라에 대한 처리는 그 다음에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문공은 그 의견에 따라 자옥의 사자 완춘을 위나라에 사로잡아 두는 한편 조나라와 위나라를 원래의 지위로 되돌려줬다. 그 조치는 예상한 대로 조나라와 위나라로 하여금 초나라에 단교할 것을 알리게 했다.

초나라 자옥은 몹시 화가 나서 진나라 군영으로 쳐들어왔다. 그러자 문공은 군대를 후퇴시켰다.

“어째서 물러나십니까?”

장군 하나가 문공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지난날 내가 망명 시절에 초나라에 신세진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은혜를 갚기 위해 한 번만 구십 리를 후퇴하기로 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초군 내부에서는 부장들이 철수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자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4월 무진날에 송나라 성공과 제나라 장군 국귀보, 진(秦)나라 장군 소지, 진(晋)나라 문공 등은 위나라 영토인 성복 땅에 군사를 집결시켰다.

이튿날 이 네 나라 연합군은 초나라 군대를 공격해 격파했다. 초나라 장군 자옥은 패잔병들을 모아 철수했다.

개선하는 진(晋)나라 군사들은 갑오날에 정나라 영토인 형오에 닿았고 이어 천토 땅에다 주나라의 양왕을 위해 큰 왕궁을 지었다.

그리고 성복에서 싸울 때 정나라는 초나라와 한편이었으나 초군이 패한 것을 겁내어 문공에게 사자를 보내 동맹을 맺자고 요청했다. 문공은 그것을 받아들여 정백(鄭伯)과 동맹을 맺었다. 

5월 정미날에 문공은 주나라 양왕에게 초군의 전리품과 포로들을 바쳤는데 병거 100대, 보병 1000명에 달했다. 이에 대해 양왕은 대부인 양자호를 사자로 보내 문공에게 패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다.

또한 의식용의 큰 수레 1대와 붉은 옻칠을 한 활 1개와 화살 100개, 검은 옻칠을 한 활 10개와 화살 1000개, 수수로 담근 술 한 통, 그리고 친위대 군사 300명을 하사했다. 문공은 세 번씩이나 사양한 다음에 머리를 조아리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진(晋)나라 문공은 패자로서 군림하게 됐다.

계해날에 주나라 왕자 호는 천토에 세운 왕궁에서 제후들과 맹세의 자리에서 문공이 패자임을 인정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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