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靑年)은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힘이 넘치는 시기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서 ‘희망과 미래, 정의와 정열을 실천하는 주체이자 실천인’의 의미를 담고 있다. 대체로 ‘청년’이라는 단어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묻어난다. 그것은 그 시대를 이끌어나갈 주인공이자 우리 미래의 모습을 대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일제강점기 청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필자는 국권이 상실된 시대였던 일제강점기 ‘여성광복군’의 활약에서 진취적인 청년의 모습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제껏 일제강점기 여성은 일제의 수난을 감내해야 했던 수동적 존재로 인식됐다. 현재 여성독립유공자 248명 중 29명이 여성광복군 활동으로 인정받고 있다. 광복군 활동으로 인정받고 있는 독립유공자가 566명, 여성참여율은 5%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일제와 당당히 맞섰던 여성군인이었다.
그들의 당당함은 1940년 9월 17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의 공식적인 자리였던 한국광복군의 창립식에서 여군복을 입고 참가했던 김정숙, 오광심, 지복영, 조순옥 등 여성광복군의 당당함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한국광복군의 창립 이전에도 여성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당시 한국광복군 창립식에 참여했던 이들은 1938년 11월에 결성된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의 34명 중 활약했던 11명의 여성 중 일부였다.
1938년 10월 10일에 결성된 조선의용대의 ‘부녀복무단’의 행적도 마찬가지였다. 부녀복무단으로 활동했던 27명의 단장이었던 박차정을 비롯한 여성들은 의용군 활동, 부녀자교육활동 등 적극적인 항전활동과 선전활동을 한 주역이었다.
치열한 국내외 항전활동에서 여성은 전쟁터에서 속출했던 부상자를 치료하는 데도 한몫을 했다. 대한매일신보(1919년 12월 20일자)에는 세브란스 병원 간호부에 소속된 여성 4명이 독립활동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당시 1914년부터 1944년까지 서울과 평양지역에서 독립활동을 했던 간호사가 28명에 이른다는 행적은 여성광복군의 활약과 더불어 주목시키기에 충분하다.
독립운동, 군자금모집, 첩보활동, 비밀연락, 독립군 규합, 여성운동 등 다방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국여성. 그 치열했던 역사의 한 자락에서 한국여성은 시대에 저항한 ‘시대의 청년’이었다. 지난 5월 7일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한국해군함정 중 최초로 여성이름을 함명으로 한 ‘유관순함’의 진수식이 진행되어 주목받았다. 진수식에는 여성광복군으로 활약했던 오희옥 여사가 참석하여 역사의 산증인으로 여군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시대를 통괄하는 청년의 행적, 그 행적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역사를 타고 흐르고 있다. 시대의 청년이란 무엇인가.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의 행적, 여성의 한계를 넘나들며 ‘민족독립’을 위해 투신했던 여성광복군의 역사에서 잊었던 ‘시대의 청년’이라는 수식어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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