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1910년 독일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클라라 체트킨이 세계 여성의 권리신장을 주장한 이래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로 제정되어 있다. 세계 여성들은 여성의 자유, 인권, 평화를 기치로 여성권리회복과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자각적 행보를 해왔으며, 올해로 세계여성의 날은 104주년을 맞이했다.

19세기 이후 유럽각국에서 전개되었던 여성운동의 태동은 18세기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산업화의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면서 여성노동과 교육, 여성주체성 회복으로 이어졌다. 그런 과정 속에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여성의 가열찬 행보는 사회진출의 토대를 마련했는데, 이런 여성 활동을 변화시킨 배경에는 교육의 힘이 있었다. 그것은 서구의 사례처럼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근대사회의 전환과정에서 중국여성의 사회적 입지변화도 여성의 자발적인 의식개혁과 사회활동에 영향을 주었던 여성교육이 주목된다.

과거 인권과 시민권의 평등을 지향하며 투쟁했던 세계여성들은 억압된 사회구조와 시대장벽에 대항하며 치열한 저항을 해왔다. 그 흐름 속에 한국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격동의 한 세기라고 함축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 그 시기에 항일투쟁을 일관했던 한국여성은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을 하는 가운데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1920년에 한국여성은 나혜석, 박인덕, 김활란 등의 자유주의 계열과 허정숙, 정칠성 등 사회주의 계열로 나뉘어 각각 3.8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면서 이념적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제의 탄압과 고문에 저항한 가운데 일군 한국여성의 당당한 외침이었다.

역사 속 한국여성독립운동가! 현대인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역사의 일부분이지만 한국여성의 행보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뚜렷하다. 그들은 ‘민족독립’을 위해 몸부림쳤던 우리민족의 또 다른 모습이자 시대의 장벽에 당당히 맞서며 저항의 움트임을 이끌었던 주체였다. 비록 전체독립유공자 13,744명 중 1.78%를 차지하는 246명(2015년 1월 기준)에 불과한 한국여성독립운동가지만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1.78%’의 작은 수치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한국여성의 진취적이고 거국적인 행보를 함축한 수치일 것이다. 지역․연령․활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구국활동으로 자유와 평화를 온몸으로 표현했던 한국여성의 저항의 소리가 그 수치의 표현에 담겨있다.

한국여성독립운동가의 저항의 움직임이 시대의 장벽을 향해 저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교육과 저항정신에 주목할 수 있다. 근대시기 여성교육기관을 살펴보면, 단순한 교육의 목적을 넘어선 민족의식 양성터 역할을 자처하며 여성구국정신을 상기시키는 자극재 역할을 했다. 당시 여성교육기관은 지역별, 시기별로 여성독립운동가의 출생지 및 활동특성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배경을 토대로 한국여성은 교육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 문화 등 전 부문에 걸친 활발한 사회활동은 물론 구국운동과 연동된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처럼 당면한 민족 현실의 틀을 넘어서기 위해 한국여성은 경험과 지혜를 모으며 민족의 결집된 힘을 일구는 토대를 마련했다.

시대의 장벽, 그 한계를 향해 소리치며 일어섰던 한국여성! 그 내적인 힘을 필자는 독립정신이 잉태되었던 교육과 그 속에서 발현된 민족정신에 다시금 주목해본다. 여성! 역사의 또 다른 주체인 그들의 시대 장벽을 넘었던 외침에 주목한다.

▲ (사진제공: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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