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문구처럼 예부터 스승과 제자는 어렵고도 소중한 관계에 있었다. 스승의 의연한 눈빛에 제자의 순수함은 스며들고, 제자의 의로운 기상에 스승은 응원의 눈빛을 보낼 수 있는 관계. 그것이 스승과 제자의 참모습이었다. 하지만 근래의 ‘참교육’은 교육의 본질을 담아내기 어려운 현실에 봉착했고, 참교육의 단어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이기주의와 학벌주의, 입시현실을 쫒아가는 현 세태에 교권은 땅에 떨어졌고, 학생들은 배움의 소중함과 감사의 눈빛을 찾기보다 성과위주에 우선을 두고 있다. 이런 현실에 일각에서는 참교육의 근간인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에 필자는 수집했던 자료를 살펴보다가 일제강점기 스승과 제자의 독립활동 행적에 한참이나 눈길을 멈추었다.
1919년 전국적으로 전개된 3.1만세운동에서 전라도 광주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광주 3.1만세운동은 3월 10일 장날에 거사가 이루어졌는데, 거사일 오후 2시가 되면서 양림동 일대는 기독교인, 숭일, 수피아 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을 따라 장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형태극기를 앞세우며 출동한 일본 기마 헌병대에 맞섰다.
이어 최남선이 지은 ‘독립운동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격문과 애국가, 독립운동가의 인쇄물이 광주의 거리에 흩날렸고 만세행렬을 저지하던 헌병대는 군중에 파고들어 무차별적인 구타와 폭행을 일삼았다. 10일에 이어 11일에는 23명 구속, 13일 20명 구속 등 수많은 애국지사의 구속행렬은 줄을 이었다.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수피아 여학교의 교사와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도 23명이나 기소되어 22명이 4개월에서 1년 6개월의 징역을 언도받았다. 그 중에서 수피아 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최고 징역에 언도된 이가 바로 박애순 교사, 진신애 교사였다.
박애순 교사는 목포 정명여학교와 수피아 여학교를 졸업한 뒤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투철한 애국심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자주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광주 독립만세운동의 계획을 철저히 주도한 주요 인물이었다.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비밀리에 만든 태극기를 시민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독립만세시위의 일선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그녀였다.
“나는 독립을 절실히 희망하였기 때문에 그 운동에 참가했다”고 공판과정에서 당당히 말했고, 만세시위를 자신이 주도한 것이라고 시인했던 한 여교사.
옥중에서도 성경책과 기도로 오직 조국독립을 염원했던 여교사의 모습은 많은 학생들에게 당당한 선생님으로 각인되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모진 고문과 심문을 받으면서도 흐트러짐 없었던 선생님의 모습에서 학생들은 조국의 건재함과 애국심의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진정 애국심은 ‘가슴에 머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는 의미를 교사와 학생은 서로 확인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광주 수피아 여고에는 3.1운동 당시 전교생의 활약과 옥고를 치른 이들을 기념하는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 동상’이 우뚝 서서 역사의 기억을 더해준다.
수피아 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항일저항정신이 담긴 시대의 역사와 그 속에 담겨진 참교육의 불씨의 흔적에서 참교육과 애국심의 의미를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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