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으로 예수가 십자가를 지기 전 유월절 만찬을 제자 들과 함께하는 장면이 다. 정중앙에 위치한 예 수를 기준으로 오른쪽 에 요한과 베드로, 가룟 유다, 안드레, 야고보, 바돌로매, 왼쪽으로 도 마와 작은 야고보, 빌립, 마태, 다대오, 시몬 등 각각 6명씩을 배치했다.
 

앙숙관계마저 극복
시몬, 당시 열심당원 ‘열정적’
세리와 앙숙… 마태와는 화평

꼭 채워야 했던 12명
구약 예언 이루려 제비 뽑아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 선택

전 세계 누빈 전도여행
소아시아·로마·아프리카 전도
도마의 한반도 복음전파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성령의 씨로 시작된 영적 이스라엘은 예수와 12제자를 통해 영적 12지파를 이루게 됐다. 지난 호를 통해 12제자 중 요한, 베드로(시몬), 안드레, 야고보(세베대의 아들), 다대오(유다), 빌립의 생애와 특징, 순교 과정을 알아봤다. 이번 호에는 이어서 시몬(가나안), 바돌로매, 마태(레위), 맛디아,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도마를 조명해본다.

원래 예수의 12제자 중에는 가룟인 유다가 포함됐으나 은 삼십에 예수를 팔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그 수를 채우기 위해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택했다.

◆ 열심당원이었던 ‘시몬’

셀롯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은 시몬(마 10:4, 눅 6:15)은 열심당원이었다. 예수 시대에 유대에는 여러 파가 있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와 셀롯(열심당) 등이 있었다. 시몬은 이 여러 파 중 열심당에 소속됐던 사람이다. 당시 열심당은 모세의 의식을 맹신적으로 지켜 ‘열정적이다’ 또는 로마의 폭정에 항거해 ‘혁명주의자이다’라는 등의 평가를 받았다. 상당히 민족성이 강한 ‘애국자’ ‘독립투사’ 집단이었다.

괄목할만한 점은 세리였던 마태와 시몬과의 관계이다. 이들은 예수가 준 계시의 복음을 접하지 않았다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관계였다. 로마제국에 항거하는 열심당에게는 국민의 세금을 걷어 로마제국에 바쳤던 세리는 처단해야 할 적이었다. 당시 열심당의 암살대상자 명부에는 마태의 이름이 상부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앙숙관계였던 이들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예수의 하늘 복음이었다. 천국복음을 깨달음으로 이들은 평화를 이룰 수 있었고,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손을 맞잡을 수 있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시몬은 소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모리타니, 흑해, 영국까지 복음을 전했다. AD 74년경 페르시아에서 톱으로 켜 몸이 두 동강이 나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참 이스라엘 사람 ‘바돌로매’

갈릴리 가나 출신으로 ‘바돌로매’의 뜻은 ‘돌매의 아들’이다. 빌립의 소개로 예수에게 나아온 제자이다. 일반적으로 예수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한 나다나엘과 동일인물로 알려졌다(마 10:3, 요 1:45, 요 21:2). 나다나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다나엘이 예수를 접하게 된 일화는 요한복음 1장에 잘 표현돼 있다. 제자 빌립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믿은 것은 아니었다.

나다나엘은 구약의 예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빌립은 그에게 전도할 때에도 구약 예언을 근거로 설명했다. 빌립은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고 표현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며 믿지 못했고, 빌립은 “와 보라”며 강권했다.

예수가 나다나엘을 보고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하자 이를 의아하게 여긴 나다나엘은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반문했다. 예수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고 말하자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믿었다.

바돌로매의 사도로서의 행적은 확실하게 전해지는 게 없다. AD 70년경 아르메니아 지방 알팍에서 십자가형으로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제1복음서의 저자 ‘마태’

마태 또한 그 이름이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레위’라고도 불렸으며 예수를 믿기 전에는 가버나움의 세리(눅 5:27)였다. 사복음서 중 제1복음서인 마태복음의 기록자이며 레위지파 알패오의 아들로 태어났다. 작은 야고보와 형제이다.

예수시대 세리라는 직업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멸시와 천대, 증오의 대상이었다. 로마제국에 세금을 바치기 위해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냈고, 비양심적인 세리들은 많은 세금을 중간에서 착복해 부를 누렸다. 세리들은 많은 비난을 받았고 이방인, 매춘부와 한통속으로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세리였던 마태를 제자로 부른 예수를 향한 질타도 이어졌다(마 9장).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마태의 집에서 음식을 함께 나누자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힐문했다. 예수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는 답변으로 유대인들의 입을 막았다.

그는 파르티아와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하다가 AD 60년경 에티오피아에서 미늘창에 맞에 순교했다. 마태의 순교와 관련해서는 음악과 그림이 유명하다. 그림으로는 콘타렐리 예배당에 소장된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작품 ‘성 마태의 순교’가 있고, 음악으로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작곡한 합창곡 ‘성 마태 수난곡’이 있다. 가톨릭교회의 성 마태 축일은 9월 21일이고, 동방정교회는 11월 26일이다.

◆ 제비뽑아 선택된 ‘맛디아’

맛디아는 12제자 중 가장 늦게 가입한 제자이다. 가룟인 유다가 은 삼십에 예수를 팔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12제자 중 한 사람이 비게 됐고, 수를 채우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

사도행전 1장에서 베드로는 가룟인 유다에 대해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고 말했으며, 다시 그 수를 채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시편 109편 8절을 들어 구약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회중들이 천한 바사바라는 요셉과 맛디아 중 제비를 뽑아 맛디아가 선택됐다. 이에 대해 사도행전 1장 26절에는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라고 기록됐다.

맛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돌에 맞고 죽지 않자 참수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 전승에 따르면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모후인 헬레나가 성지 순례 중 맛디아의 유골을 발견해 독일 트리어 지방으로 옮겼고, 1127년 이것이 재발견돼 베네딕토회 성 마티아(맛디아) 수도원 성당에 안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작은 야고보’로 불린(마 10:3, 막 5:40, 막 15:40),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 대해서는 성경 기록이 별로 없다. 그의 행적과 순교에 대해서도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으나 일설에는 돌로 쳤으나 죽지 않아 톱으로 켜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 최장거리 선교한 ‘도마’

안디옥 출생인 도마는 요한복음 20장의 일화와 함께 ‘의심 많은 도마’로 알려져 있다. ‘도마’라는 이름의 뜻은 ‘쌍둥이’ 또는 ‘소리’를 가리키며 ‘디두모(요 11:16, 20:24, 21:2)’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름의 뜻처럼 그는 쌍둥이였으며(요 11:16), 예수가 부활했을 때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의심했다. 이후 예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한 도마는 인도로 건너가 복음을 전했다.

다른 사도보다 더 먼 나라까지 이동해 복음을 전한 도마는 중국 칸바릭까지 이동했고, 일각에서는 한반도까지 복음을 전하러 왔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AD 72년경 인도 첸나이에서 이교도 원주민들의 창이 몸을 관통해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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