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대한민국 헌법은 제86조에서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제1항)’로 규정돼 있고, 제2항에서는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로 돼 있다. 대통령을 보좌해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국무총리 임명이 지체돼, 지난 4월 27일 사퇴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가 후임 총리 임명 시까지 연명되는 현 정부를 볼 때 어딘가 모르게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하며 불안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사실상 빈자리처럼 느껴지는 국무총리 자리를 채워 국정을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였다면, 청와대가 총리 후보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아 안대희 사태를 불러온 점을 감안해서라도 이번에는 철저히 검증했어야만 했다. 청와대에서는 행정 경험이 전무하지만 헌법 규정에 의한 국회의 동의가 쉬운 자로 하기 위해 전관예우 등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언론인 출신을 총리 후보로 지명했건만 예기치 못한 사태가 터져 시간을 끌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편협된 역사관과 종교관이 부적격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야당은 당연하고, 한때 청문회를 열어 해명 기회를 줘야 한다며 문 후보자를 적극 두둔했던 여권 내에서도 부적격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종교 갈등으로 비쳐지는 점을 우려해 신중한 자세를 보이지만 일부 개신교 단체마저 “역사와 기독교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총리 지명을 철회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니 문 후보자는 한마디로 무립고원이다.

그런 총리 후보자를 보는 국민은 허탈하다. 문 후보자는 정부가 인정한 제주도 4.3사건에 대해 폭동으로 규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2011년 서울의 한 교회 강연에서 “(일제의)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해서 말했다. 이것이 빌미가 돼 야당의 사퇴 공세에도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고, 기자들이 야당이 주장하는 후보 사퇴론을 끄집어내자 “야당가서 물어보라”는 등 답변은 총리 후보자로서 품위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국민여론과 야당 측,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에서는 문창극 후보자의 편협된 역사관과 종교관, 무성의하고 오만한 언론 대응으로 볼 때에 총리 자격이 없다며 사퇴 요구가 거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사퇴는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더욱이 총리실 블로그를 통해 “일부 언론의 악의적이고 왜곡된 편집으로 마치 후보자가 우리 민족성을 폄훼하고 일제식민지와 남북 분단을 정당화했다는 취지로 이해”하게 했다며,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도 했다.

총리실이 올린 동영상(온누리교회 수요여성 예배)을 보면, 문 후보자는 조선을 다녀갔거나 간접적인 경험(달레 신부는 조선을 다녀가지 않았음)을 토대로 한 선교사의 보고서, 책자 내용으로 당시 조선의 상황을 강연했다. 강연에서 언급된 일제식민,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선교사의 말이 아니다. “…남북분단의 시련을 주신 거야. 지금 와서 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 봐요…”라는 말에서 보듯 문 후보자가 생각하고 그렇게 단정한 말이다.

우리 헌법에서 모든 국민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만큼 개인이 어떤 종교를 믿고, 어느 종교시설에 나가 강연하는 것은 개인적 자유이고 취향으로 토를 달 필요가 없다. 하지만 과거 역사나 사회인들이 보편타당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선 건전한 상식과 건강한 사고에 기인해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은 일반 국민의 정서와는 다르게 사실이 틀리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은 안 된다는 것이고, 이는 개인적 문제로 종교관과는 무관한 일일 것이다.

단언컨대 “(일제의)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에 비단 기독교인이라 해도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떨며 애국혼으로 3.1운동을 했고, 그에 힘입어 건립된 대한민국의 가치로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모든 국민이 애쓰고 있음은 헌법 전문(前文)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다. 그 법통을 이어갈 책임과 의무가 있는 국무총리 자리에 역사관과 종교관에서 문제를 보인 문 후보자라니 어디 가당키나 한 것인가?

새누리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문 후보자에 대해 여론조사한 결과, 부정 여론이 71%에 이른다고 한다. 여당 지도부가 줄기차게 지펴온 ‘대통령 지키기용(用) 문창극 구하기’는 이미 동력을 상실한 상태로 속담처럼 ‘여우 뒤웅박 쓰고 삼밭에 든 것’ 격이다. 잘 보지 못해 방향을 잡을 수 없는데다 일이 막혀서 갈팡질팡하며 헤매고 다니는 경우를 비유해 이르는 말인데, 여당과 청와대가 그 꼴이다. 연속된 총리 후보 부실 검증에 여론이 분분하고 국민이 피곤하다. 이 지경이 되면 사퇴하고, 책임질 사람이 벌써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또 잘못 짚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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