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매주 화요일에 장이 서니 이름 하여 ‘골목 화요장터’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가까이 네거리 이면 도로에 서는 7일장에는 농·축산물뿐만 아니라 해산물, 생활 공산품까지 다 있어 찾는 손님들이 많다. 주변에 크고 작은 마트가 여러 개 있지만 제철에 나오는 싱싱하고 값싼 농산물에다가 생활에 필요한 밑반찬까지 다 팔고 있으니 동네 장터는 주민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다.

운동을 마치고 귀가하는 화요일 저녁 무렵에 장날 풍경이 어떠할까, 특별한 볼거리가 있을까 싶어 필자는 그곳에 가끔씩 가본다. 이면도로를 따라 볕가리개 포장이 길게 이어진 곳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면서 이것저것 살펴보면 상인들이 파는 물건이나 오가는 사람들의 행렬에서 도시 같지 않은 시골 인심이 풍겨난다. 어린애를 유모차에 태워 나온 젊은 엄마들도 보이고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물건을 고른다.

시장 초입에 옷가게에서 만 원짜리 등산용 바지가 있어 살펴보니 천 재질이나 모양이 좋아 구경하고 있는데, 중년 남자들 서너 명이 옷가게 주인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침 구의원에 당선된 자가 태극기를 어깨에 메고 인사 다니는 것을 보고 수군덕거리면서 구의원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관심을 보였는 바, 어떤 사람은 7000∼8000만 원은 되겠지 말했고, 다른 사람은 시의원이 있으면 됐지 구의원이 무슨 필요 있느냐며 열을 올리니 또 한 사람이 옆에서 맞장구쳤다.

‘태극기 아저씨’라 불리는 구의원 당선자가 인사하고 간 후에도 그들은 계속해 지방선거에 관해 화제를 올려놓고 이야기한다. 그 내용들은 대체적으로 선거를 하면 선거꾼들만 신이 나고, 당선된 자들만 주민대표라고 폼 내면서 월급을 꼬박 받아서 좋지, 자신들은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자치가 실제적으로 지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대다수 주민들은 모르고 아예 관심조차 없다는 것, 지방의원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내용들로 주민의 생생한 여론이다.

7월 1일부터 민선6기의 지방자치가 실시된다. 지금까지 5기 동안 지방자치가 실시돼 정부에서는 지방자치가 성공을 거두고 완전히 자리 잡았다 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중앙집권의 연장선상에서 지방자치는 형해화(形骸化)되어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평이 나돌고 지역주민들도 지금까지 체험한 지방자치로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크니 현재 실시되고 있는 지방자치는 자치제도의 본질마저 훼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방행정과 중앙행정을 몸소 경험한 바 있는 필자는 공직 재직 시에도 지방자치에 관해 업무적인 연구와 실제적 운영도 직접 해본 터라 이해와 관심이 높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자치의 이론적 충실성이 지방과 주민을 위한 생활자치에 좋은 방향으로 접목돼 그야말로 지방이 중심이 되고, 중앙정부의 말마따나 지방과 중앙이 상생(相生) 관계를 이루는 협력 속에서 주민이 완전한 지방자치를 구가하면서 지역이 발전되는 것을 원하는 바다.

하지만 90년대 초부터 20년 이상 지방자치가 실시돼 전국 시도, 시군구 지방 단위에서 4년마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선출돼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과연 지역주민이 원하는 지방자치인가, 또 중앙정부가 상생-협력관계에서 지방이 중앙과 동등한 입장에 있고, 자치라 할 만큼 대우받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국가재정으로 통제를 하고, 중앙에서 만든 법률과 심지어 지침에 의한 범위 내에서 제한된 몫만 하니 엄밀히 따져보자면 관치(官治)나 다름없는 일이다.

지방자치에 시큰둥해 온 주민들은 오늘날의 자치 현실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지방세, 세외수입 등 자체재원으로서는 소속 직원들의 보수도 다 지급할 수 없는 열악한 재정 상태에서 중앙정부가 응당 지급해야 할 국민복지에 사용될 국비 몫까지 은근슬쩍 지방에 미루어버리고, 자치업무에서도 법률에 구체적 위임이 없으면 조례조차 발의할 수 없는 자치 실정임에도 새 임기의 일부 단체장, 지방의원들은 지방자치 천국인 양 진군나팔만 울릴 것이다.

작가 이문열의 ‘칼레파 타 칼라’란 소설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한 도시국가에서 일어난 혁명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지도층의 부상(浮上)과 몰락에 관한 내용이다. 필자가 민선6기 지방자치가 새로 시작되는 마당에 그리스 철학자 소피클레스가 말한 인용어 “좋은 일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칼레파 타 칼라(Kalepa ta cala)’ 소설 제목을 끄집어내고 화두로 삼는 것은 우리 현실 앞에 펼쳐지고 있는 지방자치가 매우 고단하기 때문이다. 주민 입장에서 편의나 관심 면에서 골목 장터보다 못한 지방자치이니 제발 민선6기에는 구색만 갖춘 껍데기 지방자치가 탈바꿈되기를 학수고대한다. 실제로 지방이 주인이 되는 자치시대는 언제쯤 실현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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