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선방했다는 분위기다. ‘세월호 사고’의 여파(餘波)가 높을 것으로 걱정했지만 광역단체장 가운데 무소속에게 내줄 뻔 했던 안방 부산을 지켜냈고, 수도권 빅쓰리 중 인천, 경기 승리로 인해서다. 반면 새정치연합에서도 패배한 선거는 아니라 위안하고 있는 바, 서울에서 압권했고 위태했던 광주에서 수성했으며 인천, 경기에서 분패했지만 그 대신 대전, 세종에서 이겨 전체적으로 9대 8로 한 곳을 더 차지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냉철하게 살펴보면 몇 가지 특이한 상황이 감지되는 바, 지방자치의 본질이 실종된 실망스런 선거로 지방일꾼을 뽑아야 할 지방선거가 시종일관 중앙정치에 매몰되고 말았다. 벌써 6회째 지방선거를 맞았으니 적어도 20년 이상 된 지방자치를 그 이념과 목적에 따라 내실화시키고, 지역의 일을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맞건만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정도(正道)를 외면하고 정상(正常)이 아닌 선거 전략으로 결국 지역주민들의 눈을 가린 결과가 됐다.

첫째는 무효표 문제다. 새누리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부산과 경기를 이겨 다행이라 한다. 그렇지만 내막을 들어다보면, 당선자와 2위 낙선자의 표차보다 훨씬 많은 무효표를 감안해볼 때에 진 것이나 다름없다. 부산에서 서병수 당선자가 무소속 오거돈 후보보다 2만 700여 표를 이겼지만 무효표가 무려 5만 4016표였다. 그 무효표는 5월 30일 사퇴한 통합진보당 고창석 후보 이름이 투표지에 인쇄돼 그를 찍은 표가 모두 무효표로 처리된 연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경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남경필 당선자는 김진표 후보보다 4만 3000여 표를 앞섰다. 하지만 경기도의 무효표는 전국 시도 중 가장 많은 14만 9886표인데, 그 원인도 6월 1일자로 후보 사퇴를 한 통진당 백현종 후보 이름이 투표지에 인쇄되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무효표가 사퇴 후보를 찍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이전 경우보다 훨씬 많은 무효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투표용지에 사퇴자의 이름이 없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둘째는 세종시에서의 야당 후보 당선을 눈여겨봐야 한다. 중앙부처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상당수 거주하는 세종시에서 새정치연합 이춘희 당선자는 새누리당 후보를 넉넉하게 따돌렸다. 여당이 선거일 이전에 몇 차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단 한 번도 뒤지지 않았음에도, 여론조사에서 사실적 내용이 감춰지고 위장됐다는 것밖에 달리 해석이 안 된다. 정치나 선거에 관해 중립을 지키는 공무원의 속성상 겉으로 드러내놓고 행동하지 않지만 그들의 내심이나 투표권 행사에서는 야당에 힘을 실어준 결과로 보인다.
이는 세월호 사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개조와 공직혁신을 약속한 상태에서 공직자들이 보인 반(反)쇄신적 흐름이다. 당연히 공직이 쇄신돼야 하겠지만 일부 중앙정부가 자리하고 있고, 공무원의 도시라 할 수 있는 세종시에서 단체장뿐만 아니라 시의회에서도 야당이 승리했다는 것은 공무원사회가 현 정부의 혁신 드라이브에 대해 불만이 팽배하다는 증거다. 그래서 정부의 공적쇄신이 제대로 될 것인가 하는 우려마저 낳는데, 직업공무원이 쇄신 작업에 느슨하게 움직인다면 공직개혁의 성과를 섣불리 장담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대통령 고향인 대구의 투표율(52.3%)이 전국 시도 중 가장 낮다는 사실이다. 대구의 여당 후보들은 선거 전략에서 지역발전이나 주민복리보다는 ‘박근혜 마케팅’에 주력했다. 선거기간 내내 ‘박근혜 대통령, 대구가 지켜야 합니다’ 구호로 일관했지만 정작 시민들의 호응은 투표율 전국 꼴찌로 나타났으니,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여당을 옹립하고도 광역시 중 가장 낙후된 도시라는 엄연한 현실이 대구시민들에게 선거를 무관심하게 만든 계기가 됐었다고 분석된다.

위와 같은 몇 가지 사례만 봐도 이번 선거가 주는 국민 질타에 정부나 여야 정치권이 조신하고 몸을 낮추어야 하건만 그렇지 않은 분위기다. 여당은 선방했다고 안도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더 낮은 자세로 겸손해야 하고, 야당은 정치혁신 주도 등 신발끈을 동여매야 하겠다. 지방자치를 구성하는 지방선거는 지방 발전 전략이 우선돼야 하건만 ‘박근혜 대통령 지키기’ 대 ‘무능정부 심판론’ 등 중앙정치의 책략에 매몰돼 본래의 가치를 잃은 건 지방자치의 후퇴다.

이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끝이 났지만 불행하게도 여야는 그 결과에 대해 당리당략적 목적에서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분명한 점은 위기가 오고 있음에도 그 위기를 모른다는 점이다. 어느 정당도 진정성을 갖고 지방자치의 비전을 내놓지 않은 현실에서 자아도취된 그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하고 있다. 혼탁한 중앙정치에 의해 본질이 왜곡되고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 지방자치를 외면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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