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중국 이야기가 국내방송에서 전파를 탔고 시청자들이 호응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내용이 아니라 사극 TV드라마 ‘대명왕조 1566년’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중국 명나라 당시 정치, 사회, 경제에 걸친 정국 전반을 조명한 46부작 대하사극으로 지도층의 부패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를 통해 청렴문화를 추진하고자 했던 중국 하이난(海南)검찰 중앙기율위원회의 요구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2007년 1월 8일 후난위성TV에서 첫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5월 3일 중화TV가 첫 방송돼 7월 4일 종영된 ‘대명왕조 1566년’은 명나라 역사상 가장 독특한 군주인 가정제 시대의 인물 해서(海瑞)를 다룬 드라마다. 하필이면 대명왕조 중에서도 ‘1566년’을 제목으로 땄을까 하고 필자가 의문을 가졌던 바, 알고 보니 1566년은 가정제 45년으로 이 해에 호부주사(戶部主事) 해서가 가정제의 실정을 직간하는 상주문을 올려 투옥된 해였다. 청백리 해서의 죽음을 불사한 충간에 포인트가 맞춰진 제목의 사극이었다.

중국 CEO와 정치인들이 극찬한 명품 사극을 보면서 필자는 얼마 전에 끝난 국내 드라마 ‘정도전’을 생각했다. 두 드라마의 맥락이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고, 조정의 책임은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이란 교훈이 닮았기 때문이다. 단지 비교가 되는 점은 주인공의 신분 차이다. 정도전(1342∼1398년)은 고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선 학자요 정치가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이성계를 도와 새 왕조의 기초를 설계한 지배층 인물이다.

하지만 해서(1514~1587년)는 하이난(海南)출신으로 향시 합격 후 1549년 거인(擧人)으로 뽑혀 복건성 남평현의 교위로 관문에 들어선 하급관리다. 그에 관한 실제 기록에서도 나타나듯이 해서는 검소한 생활과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드라마에서는 해서가 7품 벼슬인 절강성 순안현 현령으로 근무하던 당시인 1561년(가정 40년)에 큰 수해가 일어난다. 조정에서 절강성의 견직물 대량 생산을 계획하고 수전(水田)을 뽕나무밭으로 바꾸기 위해 암암리에 제방을 파괴했는데, 이로 인해 순안현 일대에서 수해 피해를 입고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했다.

그 수해 피해사건을 맡은 해서는 우여곡절 끝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조사 결과를 소상히 적어 조정에 보냈지만 유야무야됐다. 문제의 뿌리가 조정 실권을 가진 내각수보 엄숭 일당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달리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그 후 해서는 호부의 실무자인 호부주사에 임명받아 조정에 근무하게 된다. 재정 파탄 속에서 관리들의 급료가 밀리고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서 문제가 된 ‘1566년(가정 45년)’을 맞게 된다.

가정제(嘉靖帝)는 그 당시 40년 넘는 집권에서 20년 이상의 세월동안 궁중에서 신선놀음이나 하면서 국정을 돌보지 않았으니 조정 내 실력자 엄숭 일당이 활개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엄숭은 현대 중국인이 꼽은 ‘중국 최악의 간신 Best 3인방’에 선정됐으니 그 사정을 충분히 알 만하다. 해서는 나라의 녹봉을 받는 공직자로서 더 이상 가정제의 실정을 방관할 수 없어 수많은 조정 대신들이 감히 직언하지 못했건만 죽기를 무릅쓰고 충간(忠諫)의 상주서를 올린다.

“환관·외척의 권력을 모두 빼앗자 천하 만민은 폐하가 이 나라의 중흥을 이루어 낼 것이라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진취적 열의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폐하가 20여 년이나 정무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기강이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도사들에게 작위를 남발하고, 공적이 없는데도 녹봉을 주어 천하의 충신들을 멀어지게 했습니다. 또 신하를 의심하고 죽임으로써 군신의 예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고, 군주의 길은 혼란에 빠졌으며, 신하는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천하의 위기가 아니겠습니까?”

해서는 대명왕조의 부패를 낱낱이 밝히면서 가정제에게 간곡하게 직언한 바, 조옥에 잡혀 들어가 혹독한 시련을 겪은 건 불문가지였다. 가정제의 삼남 유왕, 내각수보 서계 등 탄원에도 불구하고 교수형에 처해지는 신세가 됐으나 1566년 12월 중순 가정제가 죽자 석방됐다. 황제 대 하급관리 간 논쟁으로 끝부분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됐는데, 드라마는 여기서 끝이 났다.

드라마가 설정한 ‘대명왕조 1566년’의 시대상은 텅 빈 국고, 유왕과 엄숭 일당의 권력 다툼, 이재민 발생, 왜구 침입 등 대명의 내외 상황이 최악이었다. 그러한 시기에 6품 실무자인 호부주사 해서가 올린 충정의 상주서는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고, 군주는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명언이다. 위민의 공직관도 훌륭하지만 더 빛난 것은 낮은 공직에서도 죽기를 각오하고 직간했다는 것인데, 해서의 그 진정한 용기는 동서고금에서 후대를 이어 향기를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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