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아름다움’이나 ‘자랑’은 좋은 뜻을 가진 형용사다. 그 의미로 쓰이는 시칠리아섬의 말이 바로 ‘마피아(Mafia)’다. 이 말은 범죄조직 중에서도 시칠리아(的)인 것을 가리키고 있는데, 오늘날 마피아란 말은 일반화되어 범죄조직의 별명으로 불러지고 있다. 하지만 원래 마피아는 19세기의 시칠리아섬을 주름잡던 반정부 비밀결사조직이었던 바, 그 조직이 미국으로 건너가 대도시에서 범죄조직으로 태어났던 것이니 마피아는 원 뜻인 아름다움, 혹은 자랑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마피아가 우리나라 행정부에 기생(寄生)해 말썽을 부리고 있으니 가히 마피아 전성시대다. 이제는 입법부에도 번져 ‘입피아’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국회 마피아 같으면 ‘국피아’로 표현해야 함인데 ‘국토해양부+마피아’란 원조격이 버티고 있으니 호칭에서 밀려나게 됐다. 지난달 30일 개최된 제66주년 국회 개원식기념식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 식구들에게 국민이 국회를 두고 ‘입(立)피아’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있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관피아 등 기득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국가 개조니 공직 개혁이니 하는 말들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과제가 된 가운데, 국회도 예외일 수는 없다. 가뜩이나 오래전부터 국민은 정치 불신이 깊은 터라 국회가 행정부의 혁신에 발맞추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기에 이번 달부터 하반기 일정을 맞이한 입법부도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일고 있는 중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낸 첫 목소리는 “국회의 주인은 여당도 야당도 아닌 오직 국민이고, 앞으로 생산적인 경쟁과 협력 속에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고 국민적 역량을 결집하는 국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인 바, 정말 올바른 소리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민주주의인 이 나라에서 국가나 정부, 국회의 주인이 국민인 것은 너무도 당연함인데, 그 당연한 사실을 또 다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그렇지 못했다는 자성의 발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위기상황을 만났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가개조를 이루어내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기득권을 몰아내고 공직사회를 변화시켜 국민의 정부로 태어나야 하고, 입법부도 정통성을 지키는 민의의 전당(殿堂)으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 특히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국회가 되기 위해서는 통법부로 전락되고 있는 기능을 일신해야 한다. 청와대의 지시나 받는다고 억울해하는 여당 의원을 보면서 그 억울함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국민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의전 서열로 봐서 대통령 다음인 ‘국회의장’ 자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막중한 자리다. 개인의 영광보다는 나라의 장래와 결부된 것임을 오랫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해온 5선의 정 의장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의장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국회가 당장 크게 변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정 의장이 약속한 “국회의 대국민 소통기능을 강화해 국회가 명실상부한 ‘공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국회의장인 저부터 소통에 앞장 설 것”이라는 말은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정치 현실에서 작은 기대라도 가지게 한다.

그것은 정 의장 스스로 제안한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언제든 대화할 수 있도록 박근혜 대통령에게 ‘핫라인’ 개설을 요청했다”는 말에서다. 국회의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정부 견제기능이다. 정부의 독주와 방만한 예산 운영을 견제해 정부 권력을 분산시켜 국민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국회의 주 기능이고, 그 범위 안에서 국회-정부 간 협력이 전제되는 것이다. 국회의장이 대통령과 국정 논의는 당연함인데 이제야 핫라인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청와대와 핫라인 설치와 관련해 정 의장이 “며칠 전 대통령의 핫라인 번호를 받았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당연히 있어야 할 전화였다. 그런 현실이고 보니 전반기 국회의 강창희 의장과 대통령 간의 소통은 뻔한 일로 보인다. 강 전 의장이 “국회 운영과 관련해 대통령이나 청와대로부터 단 한 번도 전화나 부탁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한 사실에서도 박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국정을 두고 불통한 점은 충분히 짐작되는 대목이라 하겠다.

국회의장과 대통령 간 국정 운영상의 소통은 막중하다. 국회가 뒷받침하지 않는 국정 운영은 잘 될 리 없다. 국정의 바다를 이루는 것은 민심이요, 민심에 기반을 둔 ‘민의의 전당’이 바로 국회다. 파고(波高) 조절은 국회의 몫인 바, 이제 공은 정의화 의장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가 밝힌 대로 국회가 화합의 전당, 소통의 전당이 되고 국민을 위해 365일 일하는 진정한 민의의 전당이 되기 위해서는 국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야 할지는 이미 자명한 일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정부를 적절히 견제하면서 국민을 위해 바람막이, 마중물이 되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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