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18대 대선을 불과 두 달 남짓 앞둔 201210월초,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기획단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던 안대희 위원장(현 국무총리 지명자)이 성명을 발표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비리 전력 등을 문제 삼아 박근혜 후보가 그를 새누리당 대선기획단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임명할 경우 자신은 선대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직을 내려놓겠다는 내용이었다.

안 위원장은 정치도 원칙 지키는 것이 기본이고, 쇄신도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그분들이(한광옥을 지칭) 후보를 위한 마음이 있다면 스스로 나서 백의종군을 자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주장했다. 그 당시엔 대법관직을 퇴임한 지 한 달 만에 새누리당 대선 후보 측의 특별위원장이 됐다는 이유로 안 위원장 자신도 새사회연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던 시기였지만 당의 쇄신을 위한 따끔한 질책에 새누리당 당원들도 바른 소리한다고 동조했다.

그의 말 한마디로 새누리당과 박 후보는 인선 과정에서 혼란을 겪었다. 새롭게 당을 쇄신시켜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당시 입장이어서 여권에서는 대법관 퇴임 한 달밖에 안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당의 정치쇄신위원장으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해 공을 들여 영입했던 것이다. 그랬으니 안 위원장이 말한 비리연루자에게 대통령선대위의 핵심 역할을 맡긴다면 국민이 당의 진정성만 의심할 뿐이라는 논리와 주장은 나름대로 시대 흐름에 맞았던 것이다.

당시 안 위원장은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들먹였는데 국민은 개인적 이익을 좇아 당을 옮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열성을 다하여 후보님을 도와 깨끗한 정치, 깨끗한 정부를 위하여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후보와 당 그리고 국민을 위하여 진심으로 정치쇄신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자신의 직을 걸고서라도 잘못될 일을 막아야 하겠다는 안 위원장의 강단은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 후에 새누리당이 대선에 이겨 박 대통령은 선거에 힘이 돼준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높게 평가해 대통령직 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이어 작년 6월에 발족된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임무가 끝난 안대희 전 대법관은 정치권에서 물러나와 변호사 개업을 하고 있던 터에, 세월호 사고란 엄청난 국난(國難)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한 정홍원 총리 후임으로 박 대통령은 안대희 전 대법관을 지명했던 것이다.

사실, 안대희 후보자는 공직사회의 적폐(積弊)를 완전히 뿌리 뽑고 사회 변혁이 시급한 입장에서 국무총리감으로 당당히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지명될 당시만 해도 대법관을 지냈고, 더욱이 여당의 대선기획단에서 정치쇄신특별위원장직을 경험했으니 흠이 없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청와대가 정국 상황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국무총리의 자격으로 공직개혁의 적임자, 국민 존경을 받는 자,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인사를 선택했다는 후문인데, 그런 입장을 감안하더라도 서너 명의 총리 후보군 중에서 안 후보자는 최적격자라 할만 했다.

하지만 안대희 후보자의 대법관 퇴임 이후 재산 증가 등 행태들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작년 715일 변호사업 개업을 한 후 12월까지 불과 5개월간 16억 원의 수임료를 벌여들어 한 달에 3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 재산 수입을 밝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지난해 벌어들인 돈만 해도 하루에 천만 원 꼴이니, 이 금액은 일용근로자가 1년을 힘들어 벌어들이는 수입과 맞먹는 게 아닌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적 문제의 소지를 미리 방어하느라 정부가 국회에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제출한 시기에 맞춰, 안 후보자는 지난 26일 성명문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국민 정서에 비춰 봐도 제가 변호사 활동을 한 이후 약 1년 동안 늘어난 재산 11억여 원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이것까지 사회에 모두 환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국민이 느끼고 있듯이 전관 예우문제에 대해 그 자신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단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당사자야 문제된 재산을 사회 환원하면 별 탓 없겠지하겠지만 그로 인해 국민 의혹은 더 커졌다. 전관예우 없이 5개월에 16억 원의 고액을 변호사 수임료 등으로 벌어들일 수 있느냐는 것과 또 하나는 총리로 지명되지 않았다면 과연 그 돈을 사회 환원한다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다른 건 차치하고 현재 불거진 내용만 봐도 청와대의 국무총리 선정 요건인 국민 존경을 받는 자,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수월한 자라는 유리함은 빛을 잃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자신이 한광옥 위원장에게 행한 말의 맥락처럼 의심을 받는 자를 정부의 핵심 역할에 맡긴다면 국민의 정부에 대한 진정성만 의심될 뿐이니 백의종군을 자처함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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