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아파트 붕괴로 시끌벅적한 평양시를 벗어나 군부대 방문에 열중이던 김정은이 이번엔, 평안북도 소재 ‘룡문술공장’을 현지지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하다가하다가 별짓 다 한다는 생각에 이어 머리를 스쳐가는 북한의 술 이야기를 간추려 본다. 술은 사람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마약과 같다며 통제의 끈을 놓지 않는 북한이지만, 명절 때마다 세대별 술 공급을 소홀히 하지 않는 북한이기도 하다.

명절이 다가오면 세대당 1병씩 공급하는 꼴인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겐 공급받은 술의 용도가 참으로 다양하다. 이웃 간의 선물일 수도 있고, 뇌물일 수도 있으며, 장마당에 내다 팔면 국정가격과 장마당가격 차이에 따른 이익금이 발생하기도 한다. 분명 이익금이라고 했다. 2014년 5월 현재 북한의 장마당에서 파는 술은 1병에 1300원이고 명절공급용(국정가격)으로 상점에서 파는 술은 1병에 120원이다.

장마당의 술 이야기를 좀 더 자상히 하면 량강도 혜산장마당의 경우 위에서 말한 일반술(병술) 외에 주로 집에서 담근 밀주가 나오곤 하는데, 1ℓ 가격이 2500원 정도이다. 중국산 빼주의 경우 병의 크기와 알코올 농도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략 8위안에서 10위안에 거래되고 있다. 8위안이면 북한 돈 9600원이다.

북한노동자 한 달 월급은 3000원 정도이며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쌀 1㎏ 가격은 대략 4000원이다! 노동자 한 달 월급으로 쌀 1㎏을 살 수 없고, 술 두 병을 겨우 살 수 있으며, 중국산 빼주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란 이야기다. 그럼에도 술은 북한의 장마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다. 그 비싼 술을 누가 사서 마시는가고 하겠지만 ‘파는 사람도 마시고, 마시는 사람도 파는 것이 술’이며 ‘있는 사람은 있어서 마시고 없는 사람은 없어서 마시는 게 북한의 술’이다.

1990년대 중반, 이른바 식량배급 중단사태가 들이닥쳤을 때 북한의 거의 모든 솥들은 ‘구리관을 머리에 이고 술을 빚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량의 밀주가 만들어졌고, 그 ‘전통’은 ‘백두의 혁명전통’보다 더 광적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맨 정신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곳이 북한이다”라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술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살아가기 힘든 곳이 북한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장마당과 역전 등지의 선술집에서 확산되고 있는 서민들의 술 문화와는 별개로 ‘고급’과 ‘사치’가 곁들어진 술 문화도 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양의 양각도 호텔 내엔 이집션 팰리스 나이트클럽(Egyptian Palace Nightclub)이 있다. 외국인 전용으로 마카오인이 운영하고 있으며, 같은 한 건물 내에 술집, 사우나, 안마시술소 등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주체사상탑 근처인 평양시 선교구역에도 ‘더 디플로마틱 클럽(The Diplomatic Club)’이란 외국인 전용 술집이 있으며 이곳에서 파는 술은 헤네시, 마르텔, 봄베이 사파이어, 앱솔루트, 조니워커, 발렌타인, 잭다니엘 등으로 ‘폐쇄된 공화국 내의 별세상’으로 통하고 있다. 그럼에도 외화벌이를 위한 것이고 또 외국인 전용이라고 하니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마음이 조금은 관대하다는 것이 평양에서 생활하던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평양 고려호텔 뒤편 ‘음식거리’나 ‘옥류관’ 별채, ‘향만루’와 평양시 곳곳에 새롭게 자리 잡고 있는 노래방들에서 벌어지는 술판에 대해선 참을 수 없음을 성토하고 있다. 이곳 식당과 노래방들에는 한국의 레스토랑을 흉내 낸 고급 술집들이 즐비하다. 고려호텔이나 청춘호텔 등에도 고급 술집이 들어서 있으며 어둠과 함께 이곳은 환락의 장소로 탈바꿈된다. 취하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없는 나라가 북한이다. 그러나 북한의 가사를 책임진 여성들은 호소하고 있다. “장군님! 제발 남성들이 취하지 않게 해주십시요”라고.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