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이 선택한 북-일관계 개선은 우리가 지난해부터 강조해온 예정된 수순이다. 북한은 중국식 개혁과 개방이란 ‘제1의 길’을 피하고, 또 남북관계 개선이란 가장 순리적인 ‘제2의 길’을 외면하면서 북-일관계 개선이란 ‘제3의 길’을 선택했다. 북한과 일본은 지난달 29일 교섭결과를 발표하면서 국교정상화란 표현까지 언급했다.

양측이 발표한 합의문에는 “일본 측은 북한 측과 함께 북일 평양선언에 따라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 문제를 해결하며 국교정상화를 실현할 의사를 다시금 밝히고”라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국교정상화는 북일 수교를 말한다. 또 ‘불행한 과거 청산’은 북일 국교정상화 때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받을 청구권 자금과 잇닿아 있는 표현으로 풀이된다. 북일 간 국교정상화 교섭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납치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납치 문제 해결 전에 북일 국교정상화는 없다’는 기조 아래 북일 국교정상화에 대해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합의문 첫머리에 관련 문안이 들어간 것은 결국 북한의 강한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대북 전문가들은 북일 협상의 일정 단계에서 북한이 틀림없이 국교정상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30일자 도쿄신문의 취재에 응한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규슈대 특임교수는 “북한이 (납치 문제 재조사 후) 조사결과를 내는 단계에서 과거 청산과 국교정상화를 요구해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이어 “일본은 만약 북한이 내놓는 조사결과가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라면 (국교정상화 논의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한국 언론과의 통화에서 “만약 북한이 어느 정도 일본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사결과를 내놓는다면 일본도 수교협상을 시작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북한이 앞으로 조사결과에 따라 확인된 납치 피해자들을 일본에 송환하는 등의 안을 갖고 일본에 국교정상화와의 ‘맞교환’을 요구할 경우 문제는 복잡해질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재임 중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거듭 의지를 표해왔지만 북핵과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과 ‘빅딜’을 하려 할 경우 한국, 미국 등 국제사회가 용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한편, 이번 합의문에 북일 국교정상화 관련 문구를 넣는 데 일본이 동의한 것에는 냉각기가 장기화하고 있는 한국을 향한 모종의 ‘메시지’가 포함돼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미야 교수는 “북한문제와 관련, 한국이 일본을 뺀 한중미 3각 협력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일본도 북한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이 있음을 한국 측에 보여주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선택은 야비하다고 아니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북한의 체제가 개혁되고 변화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나무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미국에게도 일종의 책임이 있지 않을까. 즉 미국은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의 분쟁에서 일방적으로 일본의 손을 들어주며 동북아의 새로운 갈등을 촉발시켰다. 이에 대한 중국의 분노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느슨함으로 표출되고 있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가 손쉽게 이루어지리란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북한은 그 길 외에 선택의 여지 또한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김정은 체제는 당장 돈이 필요하고 중국의 ‘출혈무역’을 집어치우고 일본과의 ‘수혈무역’에 나서는 길만이 생존의 비법임을 판단한 것 같다. 순진하게 묻고 싶다. 그런데 왜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은 거부하는가. 그것도 북을 돕는 데는 일본의 배상금과 다를 바 없는데 동족이 내미는 손은 뿌리치면서 ‘적과의 동침’을 선호하는 북한의 야비함, 과연 환영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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