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시진핑 주석의 서울 방문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반응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조선노동당은 대외정책의 일대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기존의 중국의존도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북-일관계 개선을 체제생존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먼저 바로 이것이 북한의 서투른 아마추어 외교라는 점을 지적하며 칼럼을 시작하고자 한다.

북한은 조총련이란 매개체를 통해 일본에 다가서려 하고 있지만 북-일 사이에는 건너야 할 강이 너무 넓고 깊다. 한마디로 압록강 국경은 좁고 가깝지만 현해탄은 너무 넓고 깊다는 말이다. 우선 북한은 일본과 함께 가려면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버리든지 수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항일의 혁명전통’과 주체사상을 ‘친일의 외교전략’으로 수정하는 일이 그렇게 간단할까요. 또 대부분 회원들이 탈퇴해 조직적 측면에서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조총련의 부실한 자금과 지지가 과연 만경봉호나 다시 띄운다고 쉽게 회복될 수 있을까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오는 8일 열릴 김일성 주석 20주기 집회에 맞춰 방북할 수 있게 된 총련 지도부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충성을 보여주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라며 반기고 있지만 자신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지도부를 제외한 보통의 조총련계 인사 중에는 북한 내 친척에게 모아둔 물건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 상공업자들은 “앞으로 얼마나 돈을 뜯겨야 하는 건가”라며 걱정하고 있는 기업인들 또한 공존한다.

송금액 신고와 관련된 규제가 대폭 완화됨에 따라 ‘제재 때문에 송금할 수 없다’는 이제까지의 변명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조총련 내부에서 나온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지시하면 본국에 대한 헌금 압박이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제재 해제로 일본 입항이 허용되는 선박은 식량과 의약품 등 인도적 물자를 실은 배에 한정됨에도 북한 내부에서는 이미 ‘재일동포들로부터 물자가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1955년 북한의 ‘해외 공민단체’로 출범한 조선총련은 한동안 북한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 김일성 주석 생전 당시 김 주석의 생일(4월 15일) 축하사절 명단에 들어간 총련 인사에게 북한은 1인당 500∼1000만 엔(5일 현재 환율로 약 9898만 원)의 참가비를 받았고 1980년대에는 ‘사회주의 애국상’을 신설, 1억 엔(9억 8980만 원) 이상 송금한 총련 인사에게 김일성훈장을 주기도 했다. 또 1992년 취항해 북한과 일본을 오간 여객·화물선 ‘만경봉 92호’도 조총련 계열의 재일동포들이 80억 엔(약 792억 원) 상당의 자금을 모아 건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옛날 이야기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인 납치, 북한 핵실험 등과 관련, 일본 정부가 대북 제재와 동시에 조총련의 주요 자금원인 파친코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등 압박을 가하면서 조총련의 ‘좋은 시절’도 지나갔다. 아울러 대북정보 매체인 아시아프레스의 취재에 응한 북-중 무역 관계자는 “북한 노동당 중앙이 대일 무역 재개를 위한 준비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청진과 나선이 일본 전용 무역 거점으로 개방된다는 정보도 난무하고 있다.

우리는 워낙 폐쇄와 고립의 70년을 버티어온 북한이 어느 쪽을 향해서는 개방을 한다면 일단 환영하고 싶다. 하지만 소망이 있다면 북한이 중국식의 개혁과 개방으로 가는 것이 순서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왜인가? 북한은 영양실조 환자다. 죽부터 숟가락으로 떠 넣어야지 갑자기 우동과 생선회가 들어가면 체하기 십상이다. 한 가지 더, 보다 바람직한 개방은 같은 민족인 한국을 향한 것이 최선이라는 점이다. 자연적으로는 물론 지정학적으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압록강과 현해탄은 영원하지만 휴전선을 없애는 일은 북한만 동의하면 눈앞에 있는 현실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