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인천에 상륙하라우.” 북한의 아시아경기대회 참가는 이미 지난 4월 당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의 결론으로 결정됐다고 소식통은 전하고 있다. 3, 4, 5월은 북한에게 협박과 도발, 대화의 사이클로 이어지는 ‘도발계절’이다. 다만 올해는 이 사이클이 거꾸로 대화, 협박, 도발로 순환됐다. 5월 말로 김정은은 도발과 협박을 거두어들이고 대화모드로 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벌써 북한의 외무상 이수용이 중동과 아프리카 순방을 위해 평양을 떠났고, 이용남 무역상도 러시아와 시리아 방문을 위해 순방의 장도에 올랐다. 북한에게 남북관계의 경색은 대외적으로 이로울 것이 없지만 대내적 결속이란 단 한 가지 목표 때문에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올해 초 고위급 접촉과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풀릴 조짐을 보이던 남북관계는 지난 2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계기로 다시 악화됐다. 특히 최근 우리 정부에 대한 북한의 비방 정도는 이미 이명박 정부 때를 넘어섰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안정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북한이 외부 세계와의 관계 개선이 절실하고, 우리 정부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본격적 진전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 양쪽 모두 국면 전환 필요성을 절감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단 우리 외교안보라인의 개편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주목된다. 북한은 우리 외교안보라인 개편 결과를 주시하면서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필요할 경우 전술적으로 유연한 대남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외교안보라인 개편 결과에 따라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도 상대적으로 좀 더 유연해질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전격적으로 고위급 접촉을 다시 제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북한이 연평도 인근 우리 해군 함정을 겨냥한 포격 도발 하루만인 23일 인천아시안게임 참가 방침을 밝힌 점도 관심이다. 이르면 내달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북한이 대남정책을 완화할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로 꼽힌다. 중국의 입장을 고려할 때 북한이 남북 긴장을 적절한 수준으로 완화시키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는 6·4지방선거 이후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8월 14∼18일)을 전후한 시기가 남북관계에 다시 ‘기회의 창’이 될 것이란 관측이 있다. 평화·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교황의 방한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자연스럽게 남북 해빙 무드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고, 광복절에 맞춰 우리 정부의 새 대북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9월 19일부터 북한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열릴 인천아시안게임은 남북대화 분위기 형성에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북한 대표단은 비행기가 아닌 남포항에서 배를 타고 인천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천이 어떤 곳인가. 바로 한국전쟁 초기 낙동강까지 내려갔던 북한군은 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패배의 길을 걷게 된다.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북한군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고 부산까지 내려갔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북한에게 인천은 그 이름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지역이다. 이번에 미녀응원단을 포함한 200여 명의 북한 선수단이 인천항에 올라서며 어떤 기분을 느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여러 변수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선 북한은 남북관계를 일거에 악화시킬 수 있는 4차 핵실험 카드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고 있다. 북한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는 여전히 인력과 차량의 움직임이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의 충돌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 게다가 북한 내부적으로 김정은 체제 결속 등을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 북한은 대남 강공책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 상황을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02년 부산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미녀응원단’에 대한 상상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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