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의 김정은은 ‘속도’에 집착한다. 오죽했으면 2010년 그의 시대가 열리며 등장한 구호가 ‘단번도약’이었을까. 산업화 단계 이전으로 돌아간 북한이 속도전 구호 하나로 단번에 현대화를 이룰 것으로 김정은은 분명 착각했다. 그는 ‘마식령속도’로 강원도 원산에 스키장을 건설하고 평양시 몇 군데 물놀이장도 만들었다. 하지만 하루 세 끼 밥도 먹기 어려운 북한 보통 인민들의 실정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조선속도’란 김정은 시대를 빛내어 갈 집약적인 동원화 구호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속도전은 북한 당국이 즐겨 쓴 구호다. 김일성 시대에 평양속도와 천리마속도가 있었고, 김정일 시대에 강계속도와 희천속도가 있었다. 김정은은 이제 이런 속도의 지엽적이고 파편적인 것들을 모두 긁어모아 아예 ‘조선속도’란 새로운 구호를 제작하기에 이른 것이다. 묻고 싶다. 과연 북한이 속도를 논할 때인가. 북한 체제는 속도 이전에 시동이 꺼진 체제가 아닌가 말이다. 먼저 시동을 걸고 가속의 페달을 밟아야지 마냥 앞으로 나가려 한다면 자칫 그 체제는 통째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김정은이 모르고 있으니 안타깝다.

최근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무인정찰기가 북한의 ‘조선속도’를 비웃고 있다. 조잡하고 낙후하다 못해 시험비행 1년밖에 안 돼 추풍낙엽 된 북한 무인정찰기는 오늘 전근대적인 시대로 돌아간 북한의 자화상이다. 가격으로 쳐도 겨우 기천만 원대인 북한 무인기는 중국에 리튬 배터리와 일본제 자이로 센서 등을 조합해 만든 북한 정찰총국의 공중 정찰용 비행기다.

그런데 김정은은 오히려 무인정찰기를 남쪽 지역에 떨어뜨렸다고 해당 관계자들을 질책했다고 하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자유북한방송은 ‘주체103(2014)년 4월 20일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제목의 김정은 지시문을 입수했다며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공개된 지시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금 우리 사람들이 무슨 대상물을 건설하면 앞에만 번듯하게 정리하고 뒤에는 잘 정리하지 않는 습관이 작전수행에도 나타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작전 수행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적들을 속여야 하며 뒤처리가 깨끗해야 한다”며 “지휘관들의 자그마한 실수가 최고사령관의 권위를 훼손시킨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조직정치 사업을 짜고 들어야 한다”고 질책했다.

방송은 이에 대해 “4월 20일은 파주와 백령도, 삼척에서 발견된 무인기 문제를 놓고 대한민국에서 갑론을박했던 시점”이라며 김정은이 “무인기 침투와 관련해 북한군 지휘관들의 작전수행에서 나타난 결함을 지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방송은 지난해 3월 김정은이 1501부대 방문 당시 말한 지시문도 공개했다. 지시문에서 김정은은 “최근 적들이 군사작전에서 무인직승기를 많이 리용하고 있는 것만큼 유사시 적 무인직승기들을 소멸하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인민군대에서 앞으로 적정 감시 및 정찰을 과학적으로 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다양한 종류의 무인기를 활용한 적 종심 정찰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적의 전선지대와 종심지대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무인기 제작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무인정찰기 하나로 북한의 과학기술 발전, 그리고 전반적 군사력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현재 북한은 밥숟가락에서부터 심지어 두부 한 모까지 중국 상품이 없으면 당장 체제유지가 어려운 곤궁한 나라다. 군사력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바로 그래서 통일대박론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이 통일의 적기다. 북한이 체제를 정비하고 ‘조선속도’의 열매가 결실을 드러낼 즈음 오히려 그들의 입에서 ‘통일대박론’이 나오지 못하게 지금 당장 우리가 통일을 밀어붙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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