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새는 날기 위해서 창자의 길이를 줄이고, 뼛속을 비워야 하는 극단의 조치를 했다. 멀리 오래 나는 새일수록 뼛속은 비어있고, 창자의 길이는 짧다. 날기 위해 평생 설사를 하는 운명을 가져야 하는 것이 새의 운명이다. 하나를 가지면 하나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 모든 선택은 하나만을 가지게 돼 있다.

한국인의 위대함은 뜻밖에도 밖으로부터 들려왔다. 우리의 위대함이 자각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우리가 ‘엽전’이라고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을 때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의 위대함을 알고 칭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냄비근성’이라고 자기부정에 있을 때 다른 나라에서는 부지런한 민족이라며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냄비만큼 현대에 필요한 것도 없다. ‘빨리빨리’하는 민족적 특성을 비아냥거린 말이지만 빨리빨리 할 수 있는 능력은 극히 필요하다.

냄비는 우리의 뚝배기와 반대되는 음식 조리 용기다. 두들기면 소리가 요란하고 너무 빨리 끓고 너무 빨리 식는 것을 빗댄 말이다. 중국의 요리방법처럼 프라이팬 하나로 모든 조리를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음식이다. 뚝배기에 끓이는 된장, 찌개 같은 발효음식이나 국물을 우려내야 하는 설렁탕, 육개장 같은 음식은 뚝배기가 하고, 단순하게 즉시 끓여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냄비가 담당한다. 라면이나 국수 같은 것은 냄비를 이용한다. 현대 사회에서 냄비는 아주 필요한 음식조리용기다.

한국인은 전혀 다른 것을 내면화하는 희귀한 능력을 갖춘 민족이다. 전혀 다른 것을 품어 안았다는 것은 전체상황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빨리 끓여야 하는 세상이 오고 있고, 빨리 서둘러야 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또한 정신적인 면에서는 여유와 관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유교적인 생활적인 학문이 있는가 하면 도가적인 유유자적함과 홍익이간 같은 담대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사상과 종교에 들어있는 성찰과 사유의 특성은 더욱 복잡한 내면을 만들어주고 있다. 거기에다 기독교가 가세하면서 새로운 의식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한국인은 너무 서두르고, 조급해 보이기도 하지만,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끝장을 보고 만다. 2차를 하고 나서 노래방을 들러 또 술집을 찾곤 한다. 물론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인생사에서 열정적이지 않고서 할 일이 없다. 정열이 있지 않으면 음주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다음날 지각하는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드물다.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놀 때와 일할 때를 가리지 않는다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죽도록 술을 먹고 다음날 몽롱한 기분이지만, 기어이 자신의 일을 하고야 만다. 한국인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빨리빨리 하면서 잘한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빨리빨리 하면서 완성도가 높은 민족이 있는가 찾아보라. 쓰러질 만큼 술을 먹지만 자기 일을 끝내지 않은 적은 드물다. 기어이 덜 깬 몸으로 출근한다. 억척스럽게 놀고 억척스럽게 일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