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한국인을 설명할 때 열쇠가 있다고 했다. 그 열쇠는 ‘극단(極端)’이다. 잘 놀고, 일 잘하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다. 일하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고, 놀기 위해서만 태어나지 않았다. 두 개의 세계가 만나 조화로울 때 가장 잘 사는 것이다.

한국인은 자기주장이 강하다. 단체 여행이나 단체 행동을 해 보면 안다. 꼭 튀는 사람이 몇 나온다. 여행숙소를 이탈해 술을 먹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기어이 하기 위해서 탈출하고는 한다. 단체행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이 질서정연하게 통제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위대하다. 위대하다고 해서 모두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요소를 품고 있는 것이 위대함을 만들었지만,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인은 모르는 것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강한 민족이다. 거기에다 도전심이 강해서 기어이 일을 저질러 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한 점이 단체생활에서 이탈자가 생기게 하지만 모험심이 새로운 것을 만들고 해결하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민족은 ‘한(恨)’과 ‘흥(興)’을 아는 민족이다. 한은 한민족만의 고유정서다. 억눌림에서 발원한 한의 정서는 원망은 있으나 복수의 정서가 빠져 있어 특별하다. 그래서 화병이란 병이 생겼고, ‘한’과 마찬가지로 ‘화’로 인해 발병하는 화병도 한국인에게만 생기는 병이다. 또한 문화적인 정서이며 증세이다. 화병의 특이함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몸에 나타나는 병이란 점이다. 그래서 우울증과는 다르다.

한국인의 기질적인 특성은 ‘극단과 극단의 수용’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한의 반대편에 한국인은 ‘흥’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은 한의 문화를 흥으로 풀어내는 특별함이 있다. 흥은 일어나는 정서다. 마음에 있는 응어리, 즉 울화(鬱火)를 몸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흥이다. 그래서 흥의 문화가 가진 한국적인 노래와 춤은 노래 자체가 아니라 몸을 들썩들썩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한국인은 대척점에 있는 정서를 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른 민족과 다른 특별한 변별성이다. ‘빨리빨리’와 ‘은근과 끈기’가 있고, ‘한’과 ‘흥’의 정서가 있다. 두 개의 정서는 서로 다르다. 반대편에 있는 행동이나 정서다. 하지만 짝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공통으로 한국인의 정서적인 근원이며, 발원지가 된다.

‘한(恨)을 흥(興)으로 푼다’는 말은 한의 정서가 억눌림에서 나오는데, 흥은 해원(解寃)의 춤에서 시작된다. 몸으로 노래하는 농무가 그렇고, 원무를 그리며 춤을 추는 강강술래가 그렇다. 그리고 시장바닥에서 가난과 곡절을 겪은 광대 같은 사람이 한바탕 난장을 떠들썩하게 하는 마당놀이가 그렇다. 아무 집이나 들어가 놀아주는 각설이타령이 한국적인 심성을 닮았다.

한국인의 위대함은 ‘문제해결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해결의 근원은 ‘극단과 극단의 수용’에 있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넉넉함이 한국인에게는 있다. 앞서 기술한 ‘빨리빨리’와 ‘은근과 끈기’가 한국인에게 있고, 한과 흥의 문화적인 특성이 한국인의 품에 담겨 있다.

이 외에도 대척점에 있는 다른 기질이 독립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 여럿 있다. 남방문화인 마루와 북방문화인 온돌을 하나의 건축물에 함께 담은 것은 문화사적으로도 드문 예인데 그것이 바로 한옥이다.

한국의 문화는 전통적으로 극단과 극단을 끌어안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융복합의 문화적 기질은 한국인의 중요한 기질적 특성이다. 한국인에게 창조적인 능력이 나타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다른 것을 받아들여 새로운 것으로 창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한국적일 때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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