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한국인은 극단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하다. 그것은 기질 속에 극단과 극단을 같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빨리빨리’라는 기질의 극단적인 반대편에는 ‘은근과 끈기’라는 색다른 기질이 내재되어 있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기질이다. 이런 다른 기질의 수용이 한국인의 진정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은근과 끈기는 한민족의 근원적인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한민족이 곰의 자손이라는 단군신화다. 신화에는 많은 것이 담겨져 있다. 민족성과 건국이념이 들어있다. 신화를 이해하게 되면 국민성의 일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랜 옛날에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늘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 보냈다. 인간세계를 다스리도록 했다.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서 여기를 신시(神市)라고 했다.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한번은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신령스러운 쑥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곰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해 3·7일, 즉 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이것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자신과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환웅이 다스리던 환웅의 단국(檀國) 시대가 끝나고 웅녀에게서 낳은 단군의 조선이다. 여기에서 환인의 서자는 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가리킨다.

천부인天符印은 청동거울, 청동검, 청동방울이다. 물론 천부인에 대한 학설도 여럿이다. 일반적으로 검은 권력과 정치세력을 상징하고, 거울은 태양을, 방울은 신을 부르는 도구로 제정일치사회였음을 보여준다. 신화에서 곰이 사람이 되는 과정이 있다.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곰을 숭상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상하는 부족 간의 다툼에서 곰을 숭상하는 부족이 승리해서 권력을 잡았다는 것을 말한다. 곰을 숭상하는 부족이 바로 한민족의 근원이 되었고, 기질적으로도 호랑이보다는 곰의 기질을 가졌다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나라나 민족 신화를 이해하면 그 나라의 국민성과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단서가 된다.곰이 가진 덕목을 파악하면 한국인이 보인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꽃이 무궁화다. 무궁화와 곰의 비슷한 점은 무엇일까. 변하지 않는 것과 우직한 면이다. 무궁화는 한 나무에서 오랫동안 피고 져서 한 달 정도 꽃이 피어있다. 곰의 상징성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다. 곰과 무궁화는 유사한 점은 꾸준함과 지속성에 있다.

한국인의 특성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바쁘게 산다. 근면, 성실한 모습이었던 사람이 겨울이 오면 한가해진다. 한 여름날에도 좀 한가해지면 정자 밑이나 물에 발 담그고 늘어져 자는 것이 흔한 모습이다. 그러다 일이 생기면 바로 일어나 뛰어나간다. 타고난 한가함과 상황발생으로 인한 부지런함이 공존한다. 생활의 절박함에서 오는 부지런함과 곰의 기질에서 오는 느긋함이 있다. 누구나 절박하면 상황에 맞춰 살게 되지만 지루한 반복을 지치지 않고 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특성이다.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살아가는 동안 죽을 때까지 같은 농사일을 반복하는 것이 몸에 밴 것이다.

대부분 성격이 급한 사람은 느긋한 성격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농번기 때에 가졌던 조급함이 농번기를 벗어나 농한기가 되면 느긋해진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겨울을 잘 견뎌낸다. 그리고 같은 것을 반복하는 농사의 특성이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하나에 마음을 주면 끝까지 가는 성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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