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중국의 역사와 비교해보면 한국 왕조의 역사는 길다.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불과 15년, 중국의 터전을 잡은 한나라가 200여 년, 수나라가 30여 년, 당나라와 송나라가 300년, 명과 청이 300년 조금 못 된다. 400년을 넘는 왕조가 없다. 특별한 것은 일본이 현재 125대 왕으로 한 번도 왕조가 바뀐 적이 없다. 대신 ‘막부’라고 해서 무사가 왕권을 무시하고 통치한 역사가 길다. 일본은 전무후무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구 상에서 유일한 나라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한반도에 있었던 왕조국가는 대체로 길다. 세계적으로도 긴 편이다. 왕조의 역사는 평균적으로 400년이 넘는다. 신라가 천 년, 고려가 400여 년, 조선이 500 년이 넘는다.

놀라운 것은 기록문화에서도 알 수 있다. 흔히 한국 사람은 대충대충 한다고 한다. 그리고 기록에 대해 철저하지 못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들이다. 한국인은 은근과 끈기에서만큼은 세계에서 돋보인다. 은근과 끈기는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게 지속하는 것을 대표하는 기질이다. 한국의 기록유산은 세계적으로 강국이다. 기록에 대해 얼마나 집착했고 정확하게 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록유산이다.

조선 이전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아쉽지만, 조선의 기록유산만 봐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500년을 기록한 역사기록이다.

‘승정원일기’는 1780년 정조가 기록한 일기로부터 시작해서 조선이 무너진 1910년경까지 기록한 문서다. 얼마나 치밀하게 기록했는가를 확인하면 입이 딱 벌어진다. 날씨와 하루의 일정을 기록하고 올라온 문서와 상소 그리고 행사내용까지 모두 일괄해서 작성하고 보관했다. 밥상에 올라간 음식의 종류뿐만이 아니라 재료까지 적었다. 행사내용을 이처럼 자세하고 질서정연하게 기록하는 경우는 지금도 찾아볼 수 없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정교하고 완벽하게 기록을 한 문서는 없고, 몇백 년이라는 기간을 기록한 문서는 더욱 찾아볼 수가 없다.

무언가 하나를 시작하면 지치지 않고 오랜 기간을 지속하는 힘이 있다. 한국인이 가진 은근과 끈기가 가진 저력이다. 은근과 끈기는 현재는 피부에 닿게 느껴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세월이 흐른 다음 밝혀진다. 은근하고 끈기 있게 지속하고 있지만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된다. 근면함이 차곡차곡 쌓여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선진국대열에 도달했음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빨리빨리 문화는 ‘즉시’적으로 보인다. 퀵서비스와 택배 문화가 대표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자질들이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와 잘 맞아 떨어진다. ‘빨리빨리’와 정보화 사회의 특성과는 궁합이 잘 맞는다. 연계성이 절묘하게 합을 이룬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바로 검색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본이 마련돼 있는 곳이 정보화 사회를 앞서가고 있는 한국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지금 보이고 지금 실현되는 현상이다.

‘빨리빨리’와 ‘은근과 끈기’는 한국인의 마음속에 함께 머물러 있는 특성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은 뜻밖에도 은근과 끈기라는 특성이 기반이 되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나의 문화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받쳐주고 있는 근원적인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드러나는 것과 바탕이 되어주는 기막힌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토양이 바로 빨리빨리 문화와 은근과 끈기의 문화라는 사실이다. 썩어서 거름이 되는 것과 썩은 거름으로 성장하고 꽃을 피우는 식물처럼 한국문화는 극단과 극단의 어울림으로 태동한다.

세상 어디에도 ‘빨리빨리’하는 것을 평생 지속하는 은근과 끈기를 가진 민족은 없다. 부지런함과 조급함 모두 ‘빨리빨리’에서 나온 특성이지만 그러면서도 평생 농사를 짓고, 한 가지 일을 지속하는 은근과 끈기라는 기질적 특성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가진 문화적 기질을 성공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성공보다 더 아름다운 행복을 배우는 것에도 ‘빨리빨리’와 ‘은근과 끈기’가 적용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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