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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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2.12.23

 

<33>획기적으로 완공된 서산 간척지

‘신국토 탄생’ 확신한 정주영 회장

1982년 서산간척사업 본격 착수

폐유조선 ‘물막이 수단’으로 이용

 

현대건설, 280억원 공사비 절감

공기 36개월 줄여… 유례없는 일

英템즈강 방조제 건설사도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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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간척사업 현장에서의 아산 정주영 회장.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정주영 회장은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에서 부친 정봉식과 모친 한성실의 5남 1녀의 장남으로 1914년 11월 25일 출생했다. 당시 농사를 생업으로 해 가족들을 돌본 부친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주변의 임야, 전답을 개간해 식량을 생산하고 가족들의 주식을 해결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송전 소학교를 졸업한 후 신문 기사에 일찍이 눈을 뜬 정주영 회장은 소를 판 돈 70원을 가지고 홀로 상경하고 성실과 근면, 신용으로 사업을 시작해 한때 국내 1위 재벌기업과 세계 9위의 그룹으로 현대를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경쟁 대그룹 회장들은 대부분이 만석지기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정주영 회장은 건강한 몸 하나만으로 대기업을 일군 사업가로 1세기에 한 명 정도 나올 정도의 위대한 사업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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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간척사업 공사현장. (제공: 현대건설)

◆자발적으로 서산만 간척사업 나선 정주영

원래 농부의 아들로 성장한 정주영 회장은 은퇴 후에는 땅으로 돌아가 자연인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자 했다. 그는 정부를 설득해 서산지역 간척 사업권을 획득한 뒤 전력투구한 끝에 간척사업을 성공시켰다. 

서울 여의도의 33배에 달하는 1억 5537만 제곱미터(4700만평) 땅에 농사를 지을 농토를 확보하고 기자들을 초빙해 성대한 준공식을 했다. 그리고 서산 간척지에서 소를 키워서 향후 본인의 고향으로 소를 몰고 갈 꿈을 이루고자 소 한 마리마다 애정을 쏟아 키웠다. 마침내 북한 정권과 민간인으로서 처음 외교의 장을 열은 정주영 회장은 1998년 10월 27일 한우 5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경유해 고향인 북한을 방문하고 본인의 소망을 이뤘다. 이제는 서산만 간척 관련 상세한 뒷이야기를 서술한다.

1978년경 계획한 서산 간척지 사업은 굴곡 많은 리아시스식 서해안의 바다를 메워 옥토로 만들겠다는 국토개발 프로젝트로 정부가 맡아서 추진해야 하지만 정부는 내심 민간기업이 나서서 추진하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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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간척지. (제공: 현대건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전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이어서 어느 기업도 나서지 않았다. 이때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 나선 자가 정주영 회장이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에 속하는 대한민국에서 땅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고, 간척은 새로운 땅을 만들어내는 사업이다. 당대에 아무리 큰 비용이 지출되더라도 한번 간척한 땅은 국토가 되고, 영원한 농산물 생산의 원천이 된다.

서산 간척사업이 성공할 경우 그런 땅을 1만 5900ha 얻을 수 있다. 이는 남한 면적의 1%에 달하는 신국토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확신한 정주영 회장은 망설임 없이 시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면담 시 “대통령 각하, 해외에 나가 있던 현대건설 장비를 들여다 국토확장사업에 사용하겠습니다. 근로자들의 일자리 재창출도 가능하고 현대 입장으로는 여러모로 경영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침 해외 건설 수주도 줄어들었으니 이것을 활용할 좋은 기회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은 “정말이오? 정 회장이 그렇게 해주겠다면 나는 대찬성이오”라고 화답했다. 청와대를 나서면서 정주영 회장은 부친을 생각했다. 어린 시절 부친과 산을 개간해 밭으로 만들다 보면 부친은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손이 갈퀴가 돼 가면서 자갈을 추리고 괭이질하고 밭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이 경험이 정주영 회장의 서산만 간척사업에 큰 계기가 됐다. 1978년 11월 현대건설은 정부로부터 서산의 매립 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급변한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적극적인 추진을 못 했다. 1982년경에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한 서산간척사업은 A, B지구로 나눠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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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유조선을 이용해 물을 막은 ‘정주영식 공법’. (제공: 현대건설)

◆기상천외한 ‘정주영식 공법’ 큰 화젯거리

A지구는 당시 홍성군 서부면과 서산 부석면 간월도리, 강당리, 지산리, 양대동, 고북면의 신정리, 사기리, 창리 사이 약 6.5㎞ 길이의 방조제를 쌓아야 했다. B지구는 부석면 창리, 봉락리, 갈마리, 송시리, 태안읍 반곡리, 송암리에서 시작해 태안반도의 끝부분인 남면 양잠리, 담암리를 잇는 약 1.2㎞ 방조제를 구축하는 계획이다. 이 가운데 1982년 4월 먼저 착공한 곳은 B지구이다. 현대건설은 1.2㎞ 방조제를 쌓기 위해 약 6개월 동안 12만명의 연인원을 동원했고, 75만 제곱미터의 석재와 114만 제곱미터의 성토 물을 공사 물량으로 투입했다.

방조제의 양쪽 끝에서 시작해 최종 70m를 연결하는 끝막이 공사 때는 조수의 속도를 이겨내기 위해 4.5톤 바위에 구멍을 낸 후 두세개씩 철사로 연결해 바다로 투입한다.

100대의 덤프트럭을 동원, 8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방조제가 연결되자 6289ha에 이르는 B지구 매립지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성공했다. 1983년 7월부터 공사에 들어간 A지구의 매립 면적은 B지구보다 훨씬 넓은 9663ha였다.

45개월가량의 공사 기간을 예상했으나, 마지막 구간은 폐유조선을 물막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주영식의 창의적 공법을 도입해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서산 간척지의 경우 조석 간만의 차가 커 평균 조수량이 3억 4700만톤에 달했다. 밀물 시에는 평균 유속도 초속 8m로서, 이런 공사 현장의 경우 평범한 공법을 쓴다면 20톤 이상의 돌이나 돌망태가 필요하고 성토 물을 바닷속에 밀어 넣는 데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야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주영 회장은 일단 대형유조선(폭 45m, 높이 27m, 길이 322m)으로 초속 8m의 빠른 물살을 막아놓고 현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이나 버럭과 바위로 바다를 막는 독특한 공법으로 물막이공사를 세계 최초로 성공시켰다. 

현대건설 국내토목부의 기술팀은 현대중공업 조선설계실, 현대상선 등과 협조체계를 구축해 이 공법의 실효성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장장 6개월의 검토 끝에 공사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판단하자, 현대건설은 해체 후 고철로 사용하기 위해 울산만에 정박시켜 놓았던 22만 6000톤급의 유조선 크리어 워터베이호를 공사에 이용하고자 이 배를 서산만까지 끌고 갔다. 

1984년 2월 25일은 현대가 2년여에 걸쳐 전개된 서산 간척사업의 최대 하이라이트 공사시행일이다.유조선으로 끝막이하는 기상천외한 정주영식 공법이 실행되는 장관을 취재하고자 국내외 수많은 보도진이 간척 현장에 몰려들었고, 현대그룹의 임원들이 총출동해 진행 과정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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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간척2공구. (제공: 현대건설)

결론적으로 유조선을 이용한 끝막이 공법은 대성공을 거뒀다. 현대건설은 최초 계획대로 유조선으로 조수의 차이를 막은 후 13일 동안 흙과 버럭과 바위를 쉴 틈 없이 지속해 쏟아부어 총 6.5㎞에 이르는 A지구 방조제를 완벽하게 축조했다.

훗날 ‘유조선 공법’은 ‘정주영식 공법’으로 불리게 됐으며, 이 공법으로 현대건설은 280억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절감했고, 공사 기간도 유례없이 36개월이나 단축했다.

이 같은 사실은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다수의 외신에 소개돼 큰 화젯거리를 몰고 왔으며, 영국 템즈강 하류의 방조제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로부터 자문 요청을 받기도 한다.

서산 간척사업에 투입된 자금은 A지구와 B지구를 모두 합쳐 1926억원으로, 유조선 공법과 공사 기간 단축을 통해 공사비용을 크게 절감했다. 하지만 당장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사업에 현대건설이 이만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국토확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1984년 2월 서산 간척지 A지구와 B지구에 대한 공사를 완료한 현대건설은 순차적으로 정지작업과 염분 제거 작업을 진행해 1995년 8월 당시 농림수산부로부터 정식 준공 허가를 받음으로써, 총 공사 기간 15년 3개월에 걸친 간척사업 대장정을 마쳤다. 서산간척사업을 통해 확보된 농경지는 약 1만 5800ha이고, 1990년부터는 일부 지역의 현대서산농장은 경비행기를 이용해 볍씨를 뿌리는 첨단농법을 통해 매년 4만 7789톤(약 쌀 33만 6300석) 이상의 쌀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 서산시는 정주영이 간척한 농지에 최첨단산업 IT 기업들을 유치하고 값싼 부지를 제공함으로써 충남의 경제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정리=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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