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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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2.12.30

 

<34> 아산병원 설립동기

근대식 의술의 원조 ‘히포크라테스’

세계 의과대학 ‘히포크라테스 선서’

체계적인 ‘진단과 의료’ 가능케 해 

 

1989년 국내 최대 아산병원 개원

세계적인 명의들 초빙하고 ‘치료’

‘국민 선호 1위’ 병원 반열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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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 회장.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온 역사를 돌아보면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해 10개월 지나 태어나서 건강하게 살다가 질병 없이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일반적인 경우 거의 백 프로가 세균이 신체에 들어가면 몸속에서 항체가 발생해 자연스럽게 이겨내고 치유 되던지, 아니면 병균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아마도 이를 해결하고자 생겨난 것이 의사이고 치료해주는 것이 병원이다.

과거에는 의사가 최고의 직업은 아니었을 것으로 필자는 판단하는데, 현재는 최상위 생활자나 일반인들도 자신의 수명을 최대한 늘리고 백세시대에 걸맞게 장수하고자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요즘은 치유하기 어려운 특수한 암 또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이 아니면 돌연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몸 거동이 불편해 지면 요양원에서 살다가 요양병원을 거쳐서 대부분 인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요즘 최고의 직업으로 부상한 것이 인간의 질병을 치료해주는 의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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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의과대학 히포크라테스 선서. (출처: 뉴시스)

◆공대 중퇴하고 의대 가는 ‘기현상’

의사는 자격증을 갖고 건강하면 100세까지도 활동할 수 있는 최고 인기 직업이다. 최근 대학입학시험에서 입학하기 어려운 대학이 의과대학으로 수능시험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이 나와야 서울 소재 의과 대학에 입학이 가능하다. 의대에 입학하기 위해 삼수 이상 공부하고 입학하기도 하고, 공대에 입학한 탁월한 인재도 도중에 중퇴하고 재차 시험을 치러서 결국 의대에 가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게 대한민국이다. 이는 미래 과학을 위해서는 심각한 상황으로 간주되며, 사회 각 분야에 우수 인재가 골고루 배출돼 균형적인 경제 발전이 이뤄져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과 정반대로 우수인재가 의학 분야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참으로 특이한 사회현상이다. 그만큼 의대가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최상의 인기 직업으로 떠오른 것이다. 오죽하면 대학 졸업 후에도 의학전문대학원을 입학해 기어코 의사가 되고자 노력중인 게 한국의 일반적인 사회 상황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대 6년 과정을 졸업하고, 국가시행 의사고시를 합격해야 의사자격증을 받을 수 있으며, 전문의 과정인 인턴과 레지던트 4년을 마쳐야 비로소 진정한 의학 분야(내과, 신경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의 전문의가 되므로 최소 10년의 수련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의대 졸업 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반드시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기본적으로 의사가 가져야 할 마음과 행동의 지침으로서 다음과 같이 갈음한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는 생애를 인류에 봉사하는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마땅히 나의 스승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해 고려할 것이다 ▲나는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을 환자가 사망한 이후에라도 누설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능력이 허락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의료직의 명예와 위엄 있는 전통을 지킨다 ▲나는 환자를 위해 내 의무를 다하는데 있어 나이, 질병, 장애, 교리, 인종, 성별, 국적, 정당, 종족, 성적 지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한 때로부터 지상(至上)의 것으로 존중히 여긴다 ▲나는 위협을 당할지라도 인간의 생명을 그 시작에서부터 최대한 존중하며, 인류를 위한 법칙에 반해 나의 의학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약속을 나의 명예를 걸고 자유의지로 엄숙히 서약한다 등이다. 

이런 양심과 정직에 따른 맹세를 거쳐서 비로소 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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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근대식 의술의 원조로 불리어지는 히포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페리클레스 집권기인 기원전 460년경 그리스 코스섬에서 태어나 기원전 370년경 90세로 그리스 라리시에서 별세했다.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종교적 신비주의(예를 들면 올림포스 12신 가운데 의술을 맡은 아폴로신과 그의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를 모시는 성소이자 고대의 종합병원인 아스클레페이온 등)의 일환으로 다뤄졌던 의술을 학문적 개념으로 분리했다. 따라서 그를 서양에서는 의학의 아버지로 부르고 있고, 그의 이름을 따 오늘날에도 전 세계 의과 대학의 졸업식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다만 지금 시행되는 선서문은 히포크라테스가 선서한 원문이 아니라 194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2차 세계의사협회 개정 선언문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생애는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고 있으나, 태어난 코스섬을 떠나 소아시아, 그리스, 이집트 등을 여행하면서 의학에 대한 학식을 넓혀 갔으며, 최종적으로 코스섬으로 돌아와서 의학 관련 학교를 세워 제자들에게 그가 배운 의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의학서적을 발간했다.

히포크라테스 서적을 살펴보면 앞서 서술한대로 의학을 학문의 영역으로 연구했다는 점이다. 그의 문헌에는 “의학은 과학이다”라는 일관된 사고방식이 표시됐다.

기본적으로 히포크라테스는 환자가 가진 고유의 치유력을 통한 치료를 중시했고, 악령(세균)이 침투해서 질병이 생기는 것이란 사고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당시의 의술은 전반적으로 매우 미성숙한 것으로, 인체의 4가지 체액밸러스가 무너져 질병이 발생한다는 체액론에 근거했고, 인체는 불, 물, 공기, 흙이라는 4원소로 돼 있으며, 인간의 생활은 그에 상응하는 적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네 가지 것에 의해 이뤄졌다고 판단한다.

이 네 가지 액의 조화가 보전돼 있을 때를 히포크라테스는 ‘eukrasie’라고 불렸으며, 반대로 네 가지 조화가 깨졌을 경우를 ‘dyskrasie’라 해 이때에 질병이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환자를 치료했고, 환자의 피를 체출해 치료한다는 방혈을 의술에 도입했다.

즉 열이 높은 환자에게 이뇨제와 하제를 투입해 ‘불순물’을 제거한 후에도 차도가 없으면 피를 뽑았다. 히포크라테스는 방혈에 크게 의존하진 않았으나, 후대로 가면서 이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방혈은 주요한 치료법이 돼 남용됐다. 따라서 방혈치료는 질병에 걸린 인간에게 이뇨제와 하제를 투입해 치료했다.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뇌에 기반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사람으로서, 당시 그리스인들은 감정이나 생각이 심장에서 생겨난다고 믿었고, 머리를 다친 환자를 많이 봐왔던 히포크라테스는 감정, 생각, 기쁨, 고통이 전부 뇌에서 발생한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서는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집대성했으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환경에 대해: 생활환경과 건강, 질병의 관계  2.신성한 병에 대해: 질병을 신이 보낸 형벌이라 주장하는 돌팔이 의사와 부술 치료사를 비난하고 모든 병에는 자연적인 원인이 있다고 판단 3. 질병에 대해: 의사는 질병의 과거와 현재, 앞으로의 전개 과정을 알아야 함을 주장 4. 임상학: 의사는 한 질병의 경과를 관찰한 대로 적어나가야 함을 주장 5. 외과수술에 대해: 골절과 탈골에 대한 외과적 치료법에 대한 것 6. 경구 모음: 의사들이 알아야 할 지식이나 교훈을 경구의 형태로 모아 놓은 책으로 이 책의 첫 경구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짧고, 경험은 때론 부정확하고 진단은 어렵다”이다.

즉 질병에는 잠복기와 발병기, 위험기가 있다고 판단하고 각 질병에 대한 임상학적 관찰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것을 근간으로 체계적인 진단과 치료를 가능케 했으며, 후대 의학발전에 큰 영향을 줬다. 현재 병원 입원환자는 담당 의사들이 회진 시 환자질환 상태를 기록하면서 치료하는 것이 여기서 유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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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정주영 회장, 병원·의대 설립

질병에 대한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아산 정주영 회장은 대한민국도 빠른 시일 내로 백세시대가 올 것으로 판단하고 전국 중소도시(강릉, 정읍 등)부터 아산병원을 설립했고, 서울요지인 풍납동에는 1989년 6월 23일 국내 최대 규모(현재 2715병상)의 아산병원을 개원했다. 세계적인 명의들을 초빙하고 치료함으로서 국민들이 선호하는 1위 병원 반열에 올랐고 현재 세계 30위권의 병원으로 성장했다. 또한 아산은 의료진 양성을 위해서는 의과 대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며, 지방이지만 울산시에 위치한 울산대학교에 의대를 설립했다.

(정리=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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