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미산책] 닭의 역사와 조리문화①
[별미산책] 닭의 역사와 조리문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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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함께 등장하는 천하제일의 닭 장미계
▲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닭은 우리나라 역사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온 설화 함께 김알지(金閼智)의 탄생 담에 의하면 신라왕이 어느 날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 속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호공(瓠公)을 보내어 알아보니, 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서 그 궤를 가져와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이 아이가 신라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설화에서 닭은 이미 사람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주의 천마총을 발굴했을 때에 수십 개의 달걀이 담긴 단지가 나온 바 있다. 달걀에서 새 생명이 부화하기 때문에, 알을 소생(부활)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생각해 죽은 자의 부장품으로 삼은 것이다.

가야시대 유물 중 달걀껍데기가 담긴 토기가 발견된 것 등으로 보아 우리는 이미 삼국시대 이후부터 닭을 사육하고 닭요리를 해 먹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우리의 옛 조상들은 여명(黎明)을 알리는 보신용(報晨用)으로도 닭을 요긴하게 여겼다. 고려의 닭이 다른 어느 나라의 닭보다 시간을 정확히 잘 맞춘다고 해 고려시대 왕궁에서는 자시(子時, 밤 12시)에 우는 닭인 일명계(一鳴鷄), 축시(丑時, 밤 2시)에 우는 닭인 이명계(二鳴鷄), 인시(寅時, 새벽 4시)에 우는 닭 삼명계(三鳴鷄)를 함께 길러서 시간을 알렸다.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우는 닭의 울음소리가 10번을 넘으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도 한다. 특히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해 뫼를 짓고 제사를 거행했다.
새벽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잡귀들도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 왔다.

제때에 닭이 울지 않으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도 했다. 초저녁에 닭이 울면 재수가 없고, 오밤중에 울면 불행한 일이 벌어지며, 해진 뒤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한편 닭은 서조(瑞鳥)인 꿩을 대신하는 길조로 인식됐다. 그래서 집안의 잔치나 혼례에는 닭이나 달걀을 사용한다. 설날 떡국에 닭을 넣었고, 혼례 초례상에 닭을 청ㆍ홍보에 싸서 놓았으며, 폐백에도 닭을 사용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새해를 맞이한 각 가정에서는 닭이나 호랑이, 용을 그린 세화(歲畵)를 벽에 붙이는 풍속이 있었다. 그 이유는 세화의 동물이 악귀를 쫓아내는 영묘한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닭의 그림이 유래한 데 대해서는 후한(後漢) 때 동(董勛)의 저서 <문례속(問禮俗)>에서 ‘정월 초하룻날을 닭의 날’이라고 한 것과 양(梁) 나라 종름의 <행초세시기>에서 ‘초하룻날 닭을 그려 문에 붙이고’라는 말을 <동국세시기>에 인용하고 있다.

새해의 첫 유일(酉日)을 ‘닭의 날’로 정해 놓고, 부녀자들의 바느질을 금지했다. 이날 부녀자들이 바느질이나 길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흉해진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이날에 모임하지 않으며, 닭을 잡거나 지붕 손질을 하지 않는다. 모임을 하면 싸움이 일어나고, 닭을 잡으면 닭이 제대로 자라지 않으며, 지붕을 손질하면 닭이 지붕을 망가뜨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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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2013-08-31 19:23:18
그런데 왜 사람들은 닭대가리라는 말을 사용할까요? 여기서 읽어보니 닭이 참 좋은 역활을 하는것 같고 조상들도 길조로 여긴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