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함흥냉면으로 둔갑

▲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감자가 한반도에 들어온 건 약 18세기경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감자가 그리 많이 심어진 것은 아니다. 구황작물의 하나로 보급됐을 뿐이다. 1920년대 개마고원 개발에 나서면서 이 지역에 감자 재배면적을 넓혔다.

일제는 가공 산업용의 감자전분을 함경도지방에서 얻었다. 함경도 내륙에서 얻은 감자전분을 함흥 등 항구로 옮겨 와 일본과 한반도 전역에 운송했다.

함흥이 감자전분의 운송기지여서 함흥 사람들은 감자전분을 이용해 감자농마국수, 감자옹심이, 감자떡 등을 해 먹었다. ‘농마’는 녹말의 북한 방언이다. 그래서 감자전분으로 뽑은 국수를 농마국수라 부른다.

감자전분의 반죽은 치대면 치댈수록 굳는다. 그래서 이를 ‘돌반죽’이라고 한다. 이를 나무틀로 만든 국수틀로 국수를 뽑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이를 해결해 농마국수를 대중화시킨 것이 1920년대 등장한 기계식 국수틀이다.

농마국수는 면발이 희고 가늘며 질긴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명이 짧아진다고 해 국수가 아무리 질겨도 가위로 자르지 않는다. 감자녹말에 백반물과 뜨거운 물을 적당하게 넣은 다음 익반죽해 국수를 만들어 놓는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삶은 다음 고기는 얇게 썰어 양념에 무치고, 국물은 기름기를 걷어내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춰서 육수를 만든다.

다진 파와 마늘에 고춧가루, 참기름, 깨소금, 간장을 육수와 섞어서 걸쭉하게 국수 양념장을 만든다. 물기를 뺀 가늘고 흰 감자전분국수 면발에 양념을 넣어서 버무려 담은 다음, 무김치(또는 배추김치)와 고기, 오이를 얹어서 모양을 내고 실고추와 달걀지단으로 고명을 한다. 그리고 육수는 따로 그릇에 담아낸다.

▲ 농마국수

흰 감자전분면발에 식초로 삭힌 고명은 함경도 근해에서 많이 잡혔던 홍어, 가자미, 명태 등을 얹고 고춧가루,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으로 비빔을 한 후 가자미회를 얹은 것이 회국수다.

재료와 조리법의 차이는 있지만 물국수인 농마국수가 함흥물냉면의 전신이며, 감자전분국수를 비빔 한 후 홍어나 가자미회를 얹은 회국수가 함흥비빔냉면의 전신이라 할 것이다.

1994년 1월 25일 발행한 북한의 <조선의 민속전통-1식생활풍습편(북한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에도 함경남도 향토음식에 물냉면은 ‘농마국수’, 비빔냉면은 ‘회국수’라고 나오지만 함흥냉면은 보이지 않는다.

함흥냉면이 남한에는 존재하나 정작 북한에는 농마국수와 회국수는 있지 함흥냉면은 없다.

남한 역시 한국전쟁이전 까지 함흥냉면집은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한국전쟁 이후 함경도 지방에서 피난을 온 실향민들이 함흥의 농마국수나 회국수를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내 걸고 팔기 시작했으며, 사리원, 원산 등 이북의 여타지역 실향민들도 생계수단으로 자신의 고향 이름을 간판으로 걸고 냉면집을 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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