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미산책] 닭의 역사와 조리문화②
[별미산책] 닭의 역사와 조리문화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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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호색가, 계관육이 ‘천하일미’
▲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호남 지방에서는 며느리가 닭의 머리를 먹으면 시어머니의 미움을 사게 된다고 해 닭의 머리를 꺼린다. 경기 지방에서는 부녀자가 닭의 머리나 발을 먹으면 그릇을 깨뜨리게 된다고 전한다. 또 임부가 닭고기를 먹으면 아기의 살갗이 닭살처럼 된다고 해 먹지 않았다.

그런데 ‘포박자(抱朴子)’ 등 중국 문헌을 종합해 보면 귀신을 쫓기 위해 닭의 그림을 붙이기 전에 닭을 직접 문에 매달았다.

닭의 피에 영묘한 힘이 있다고 믿어 닭 피를 문에 바르다가, 후에는 죽은 닭을 매달았다. ‘퇴귀법(退鬼法)’의 하나로 마을에 돌림병이 돌 때에는 닭의 피를 대문이나 벽에 바르기도 했다.

닭 피뿐만 아니라, 사람이나 그 밖의 짐승의 피에도 불가사의한 힘이 있어서 악귀를 쫓는다고 예부터 여러 민족이 공통적으로 믿어 왔다. 또 '행초세시기'에는 정월 초사흗날에 달걀을 마신다고 했다. 달걀을 마심으로써 오장 내의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생각했다.

송(宋)나라의 범엽(范曄)이 저술한 <후한서(後漢書)>에 ‘마한에는 장미계(長尾鷄)가 있는데, 꼬리의 길이가 5척(尺)이다’라고 기록되었으며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에 ‘한(韓)에는 꼬리길이가 5자(尺)이나 되는 세미계(細尾鷄)가 있다’라고 기록 되어 있고 <수서(隋書)>에 ‘백제에는 닭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송대(宋代)의 의학서인 <개보본초(開寶本草)>나 <도경본초(圖經本草)>에서는 약용으로는 역시 조선의 닭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고, 중국 명나라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보면 “백제 닭은 무척 아름답고 평택 닭은 식용으로 으뜸이다”하였고 특히 조선의 장미계(長尾鷄: 꼬리가 긴 닭)가 꼬리가 3∼4척에 이르며 닭 중에 가장 맛이 좋다“고 하여 중국 사람들이 앞 다투어 백제의 장미계(長尾鷄)를 구입해 갔다고 한다.

이러한 닭의 모습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고구려 무용총(舞踊塚) 천장벽화의 주작도(朱雀圖)로부터 긴 꼬리를 가진 닭을 연상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붉은수탉(丹雄鷄)·흰수탉(白雄鷄)·검은수탉(烏雄鷄)·오골계(烏骨鷄)로 나누어 각각의 효험을 서술하고 있다.

대개 털빛이 붉은 닭고기의 기운은 심(心)에 들어가고 털빛이 흰 닭고기의 기운은 폐(肺)로, 털빛이 검은 닭고기의 기운은 신(腎)으로 “털빛이 누런 닭고기의 기운은 비(脾)로 들어가는데 어느 것이나 다 간(肝)으로 돌아서 간다”하고 또한 “닭은 간화(肝火)를 돕는다”고 하여 닭은 오장을 충실하게 하지만 그중 특히 간으로 들어가 간의 양기(陽氣)를 도움으로서 체내의 부족한 양기를 보충하는 효과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조 중종 때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오면 정력에 좋은 계관육(鷄冠肉)을 해 바쳤는데, 이 계관육을 먹게 되는 사신(使臣)은 아무리 언짢은 일이 있어도 입이 금방 함박만해 진다고 했다.

한편 우리는 닭의 날개를 먹으면 ‘바람이 난다’는 속설을 알면서도 우리네 장모님들은 백년손님인 사위가 오면 시암닭을 잡아 푹 고아 먹이는데, 그 이유는 닭에 정력의 보고(寶庫)가 바로 닭의 벼슬과 날개 부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호색가들은 계관육을 천하일미(天下一味)로 알고 즐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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