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미산책] ‘계삼탕’에서 ‘삼계탕’으로
[별미산책] ‘계삼탕’에서 ‘삼계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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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삼계탕은 조선시대 요리서에는 보이지 않는다. 삼계탕은 영계백숙과 재료나 요리법이 별 차이가 없는 점으로 미뤄 개화기 이후 영계백숙에서 갈라져 나온 음식인 것 같다.

삼계탕은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이 부재료이므로 ‘계삼탕(鷄蔘湯)’이라고 해야 우리 어법에 맞는 말이다. 그래서 국어사전에서는 계삼탕을 표준말로 올려놓고 있다.

조풍연 선생은 이에 대해 “계삼탕이 삼계탕으로 된 것은 인삼이 대중화되고 외국인들이 인삼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자 삼을 위로 놓아 다시 붙인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1989년에 발간된 <서울잡학사전>에는 ‘계삼탕은 식욕을 돋우고 보양을 하기 위해 암탉에다 인삼을 넣고 흠씬 고아 먹는 것이다. 배를 가르고 삼을 넣고는 빠져 나오지 못하게 실로 묶는다. 여름철 개장국 먹는 축보다 더 여유 있는 집안의 시식이다. 계삼탕이 삼계탕이 된 것은 인삼이 대중화되고 외국인들이 인삼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자 삼을 위로 놓아 명칭을 다시 붙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명칭이 바뀐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삼계탕(蔘鷄湯)’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1910년에 일본인들이 작성한 <중추원조사자료>다. 이 자료에는 ‘여름 3개월간 매일 삼계탕, 즉 인삼을 암탉의 배에 인삼을 넣어 우려낸 액을 정력(精力)약으로 마시는데, 중류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라고 적고 있다.

보약이 아닌 요리로서 삼계탕과 가장 유사한 기록은 1917년판 <조선요리제법>이란 조리서에 닭국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닭을 잡아 내장을 빼고 발과 날개 끝과 대가리를 잘라버리고 뱃속에 찹쌀 세 숟가락과 인삼가루 한 숟가락을 넣고 쏟아지지 않게 잡아맨 후에 물을 열 보시기쯤 붓고 끓이나리라’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18세기 <승정원일기>의 연계탕 기록에서부터 시작한 대부분의 닭 요리에 들어가는 ‘닭’은 새끼를 낳지 않은 ‘연계(軟鷄)’다.

연계를 영계라고도 부르는데 ‘연계백숙(軟鷄白熟)’ 혹은 ‘영계백숙’이란 말의 ‘백숙(白熟)’은 간을 하지 않고 닭을 끓인 것을 말한다. 백숙을 끓일 때는 맹물에 보통 마늘을 집어넣는 것이 일반적인 조리법이었다.

▲ 삼계탕

‘영계’는 ‘연계(병아리 티가 있는 닭)’가 고기가 연한 닭이라는 ‘연계(軟鷄)’로 바뀌었다가 아직 알을 낳지 않은 어린(young) 닭이라는 의미의 ‘영계’로 변화된 말이다. 영계는 흔히 ‘약병아리’라고 하듯 보신에 좋다고 널리 알려졌다.

백숙에 마늘 대신에 인삼이 들어간 것이 삼계탕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1924년, 이용기 찬(攢)>의 연계백숙 조리법에는 ‘혹 인삼 먹는 이는 삼을 넣어’란 구절이 나온다. 인삼가루가 아닌 인삼을 직접 넣어 요리를 해먹은 가장 이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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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2013-10-04 23:56:10
삼계탕 먹고 건강도 챙기고 인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