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봄꽃이 화려하게 물드는 4월이 찾아왔다. 봄꽃은 하나둘씩 꽃망울을 피우더니 어느새 만개해 도심 곳곳을 수놓았다. 주말이면 꽃놀이 명소에는 연인이나 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여의도 벚꽃놀이’ 등 소셜 미디어(SNS)에는 연일 ‘인증샷’이 올라온다. 이처럼 바쁜 현대인들에게 봄꽃은 여유와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조선시대에도 우리 선조들은 봄꽃 명소를 찾아 봄날을 즐겼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이 지나간 후 고개를 쏙 내미는 봄꽃을 보기 위해 선조들은 한양 곳곳의 명소를 찾아 나섰다. 그렇다면 문헌에 기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제 들어도 참 듣기 좋은 말이다. ‘복(福)’ 받으라니 좋아하지 않을 이가 누가 있으랴. 새해를 맞아 건네는 인사 한마디에서 우리 조상들의 온정(溫情)이 느껴지는 듯 하다. 우리나라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설날이 다가오면서 옛 풍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음력 1월 1일)로,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해를 알리는 뜻깊은 날인 만큼 복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세시 풍속 안에 담아 놓았다. ◆고운 설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올해도 찾아왔다. 공부 여하를 떠나 수험생과 학부모 모두 긴장되는 수능.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원하는 대학에 가느냐 아니냐가 결정되기에 매우 중요한 날이다. 조선시대에도 인생의 커다란 갈림길이 있었으니 바로 과거(科擧)시험이다. 오늘날 수능은 대학 입학을 위한 것이지만, 과거시험은 관직을 얻기 위함이었다. 선조들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를 제공했던 과거시험은 어떻게 치렀는지 알아보자. ◆과목에 따라 인재 선발 과거시험은 ‘과목에 따라 인재를 선발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시험의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최근 서울 도심에서 동서양 군례 의식이 펼쳐졌다. 영국 스코틀랜드 근위대 군악대와 서울 왕궁 수문장 등이 선보인 행사였다. 이들의 군례 의식 동작과 복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성이 느껴졌다. 영국 스코틀랜드 근위대는 38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들은 영국 왕궁 등 주요 시설의 경비와 국가원수의 사열식을 담당하는 영국 육군 부대다. 우리나라도 수문장(守門將)이 서울 왕궁을 지켰다. 오늘날 궁궐과 숭례문에서 재현되는 수문장 교대 의식은 조선 왕실의 호위 문화를 알리는 대표적인 문화행사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
경국대전, 남녀평등 중시 담겨세종 “불이행자 벌하라” 전교조선 후기 상속제도 점차 변화[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인기 드라마 속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주제가 있다. 바로 ‘출생의 비밀’과 ‘상속 문제’다. 어렵게 살아온 한 아이가 자신의 친아버지를 찾았는데 알고 보니 대기업 회장이라는 스토리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또한 재산상속 문제로 인해서 한 가정에 불화가 빚었던 일들을 뉴스로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 재산상속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재산상속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던 것일까.◆다양한 재산상속 방법먼저 ‘
영수증 있으면 전국 이용 가능마지막 주막서 남은 돈 정산[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여름이다. 날씨가 무더울수록 조금은 여유를 부리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은 ‘여름 여행’이다. 그런데 여행을 하고자 하면 늘 돈이 필요하다. 요즘은 카드 한 장이면 국내외어디든 떠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떤 돈을 사용했고, 어떻게 돈을 들고 여행을 다녔을까.◆세상의 소문 가장 빠른 곳과거 우리나라는 화폐수단으로 ‘엽전’을 사용했다. 놋쇠로 만든 옛날의 주화로 대체로 둥글고 납작하며 가운데 네모진 구멍이 있었다. 최초의 엽전
문서 읽고 정사 논하던 임금‘눈병·종기’ 고정적 질병 돼‘가체’ 올린 궁녀는 목디스크내시는 허리디스크에 시달려[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바쁜 현대인에게 뗄 수 없는 것이 ‘직업병’이다. 이 병은 동일한 자세나 업무를 반복할 경우 신체의 일부가 약화되면서 발병한다. 예컨대 컴퓨터를 자주 쓰는 직장인은 ‘목 디스크’에 약하고, 앉아서 일을 하다보면 ‘하지정맥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무거운 짐을 드는 사람은 ‘허리디스크’를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임금들의 직업병은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어떤 병이 있었는지 들여다볼까.◆조선시
‘금살도감’으로 도살 막아 태종 때 오랫동안 비 안오자 승정원 “소의 원한 때문”[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사또, 제가 아랫집 김 서방이 소 잡는 것을 봤구먼유.” (농부)“네 말이 사실이렸다! 여봐라! 어서 가서 김 서방을 잡아오너라.” (사또)조선시대에 한 남자가 관아에 끌려왔다. 소를 잡았다는 이유에서다. 사또는 화를 내며 소를 잡은 게 사실인지 확인했다. 김 서방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며 죄를 토로했다. 이는 무슨 상황일까. 조선시대에도 소를 먹었을 텐데, 왜 소를 잡은 게 관아에 끌려갈 정도로 문제가 된
황사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과학발달로 관측·기록 활발[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봄철만 되면 찾아오는 불청객도 있으니 바로 ‘황사’다. 황사란 주로 봄철에 중국이나 몽골의 사막에 있는 모래와 먼지가 상승해 편서풍을 타고 멀리 날아가 서서히 가라앉는 현상이다. 토우(土雨), 흙비라고도 불리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황사로 인해 백성들이 고난을 겪었다는 기록이 곳곳에 남아있다.◆삼국시대 속 황사 기록먼저 한국에서 나타나는 황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속아들딸 균등한 상속 기록[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재산상속에 대한 문제는 참 복잡하다. 남녀 차별이 없어진 세상이겠지만, 정작 상황이 맞닥뜨려지면 장남 중심으로 분할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장남이 가장 많이 유산을 물려받았을까?◆경국대전 속 상속 규정‘상속’이란 일정한 친족 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서, 한 사람이 사망한 후에 다른 사람에게 재산에 관한 권리와 의무의 일체를 이어 주거나, 다른 사람이 사망한 사람으로부터 그 권리와 의무의 일체를 이어받는 일을 뜻한다.조선시대 기본 법
‘一心’ 글자에 기호 넣어 완성문맹인 천인, 손가락 모양 그려[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사인(sign, 서명)이 익숙한 시대다. 문서에 도장을 찍기도 하지만 빠르고 편하기 위해 사인을 많이 한다. 보통 사인하면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사인이 있었다. 이를 수결(手決)이라고 했다.◆관직있는 신분계층서 사용수결은 관직에 있는 신분계층에서만 쓰던 부호였다. 수결은 ‘일심(一心)’ 두 글자를 썼다. 특이한 점은 보통 ‘一’ 자를 길게 그은 후 상하에 점이나 원 등의 기호를 더해 자신의 수결로 정했다. 각자 나
태교법, 서적 담겨 널리 보급산모가 실천할 지침 등 담겨[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오늘날 못지않게 조선시대에도 태어날 아이를 위해 산모는 몸과 마음가짐을 반듯이 가졌다. 먹는 것은 물론, 입는 것과 보는 것, 듣는 것 등 모든 환경과 행동에 대해 산모는 주의를 기울였다. 산모가 경험하는 것을 태아가 함께 느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태교가 아이의 성품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태교를 했을까.◆‘소학’ ‘열녀전’ 등 읽어왕실의 경우 장차 왕위에 오를 아이가 덕(德)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바른 성품을
세종, 조세개혁 백성에게 물어오랜 연구·논의 끝에 법 제정영조, 공사 시 민력 동원 전에여론조사 통해 동의 얻어[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여론조사를 벌이는 것이 익숙한 시대다. 최근 ‘6.13지방선거’와 관련된 여론조사가 실시되는 등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조선시대에도 국가에서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기록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여론조사는 어떤 것이 있을까.◆조세 문제 해결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에는 세율규정법인 ‘답험손실법’을 사용했다. 한 해의 농업 작황을 현지에 나
임금의 눈 역할… 첩보작전 방불케해굶어죽거나 자객의 습격 받기도임무 담긴 봉투는 4대문 밖에서 확인마패 외에도 다목적 자 ‘유척’ 지녀비리 예방·적발하고 조세부담 감찰[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도성 밖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열어 보거라.”임금에게 받은 봉투 한 장을 손에 쥔 남성. 부랴부랴 짐을 싸서 등에 걸쳐 매고 도성 밖으로 나갔다. 임금의 명령대로 도성 밖 조용한 곳에 봉투를 여는데, 봉투 안 종이에는 글자가 적혀있다. 그의 사명이었다. 임금의 눈을 갖고 세상에 나간 그는 ‘암행어사’였다.오늘날에도 ‘드루킹’ ‘갑질논란’ 등 여
유교문화 영향, 단정하게 꾸며미분에 물·기름 섞어 펴 발라연지 대신 고추 말린 한지 사용[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따뜻한 봄 날씨가 한창이다. 추운 겨울이 지난봄에는 옷 색도 밝아지고, 여성들의 색조 화장도 화사해진다. 요즘에야 화장법이 발달해 다양한 색조화장품을 기호에 맞게 어디서든지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여성들은 어떻게 화장을 했을까.◆쌀이나 분꽃씨의 흰 가루 사용조선시대 화장 문화는 검소하고 실리를 강조했던 유교 윤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화려한 화장보다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 단정한 몸가짐을 유지하면서 내면과
고양이 이름 ‘금손’이라 짓고 아껴성종, 원숭이에게 ‘겨울옷’ 입히려 해김홍도 그림 속 집 뜰에 두루미 살아[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반려동물’이 익숙한 시대다. 과거에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의미로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써왔지만, 오늘날에는 짝 ‘반’, 짝 ‘려’를 써서 짝이 되는 동물, 즉 ‘인생의 동반자’라는 뜻으로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최근 1인 가구가 늘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우리 조상들도 자연을 좋아하고 동물을 아껴왔다. 이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과학적이고 체계적
원어민이 외국어 가르치던 ‘사역원’내부서 우리말 쓰면 최대 파면까지4개국어 배워… 제1외국어 ‘중국어’외국어로 매매 모습 담은 교재 이용[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오늘날은 지구촌 어디를 가던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과 교류할 수 있다. 서점에는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일어 등 각국 언어를 공부할 수 있는 서적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외국어를 가까이 할 수 있는 시대인 것 이다.그런가 하면 사극이나 역사 속에는 우리 선조들이 주변국과 외교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당시에도 외교는 매우 중시됐는데, 선조들은 어떻게 외국어 공부를 했
中 원나라 법의학서 ‘무원록’세종·정조 때 조선에 맞게 고쳐수차례 검시 반복, 원인 파악은비녀로 독살 확인하기도[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은 해다. 화재사고는 물론 더욱 전문적인 수사가 필요한 사건사고도 많다. 오늘날에는 과학수사가 있어 살인·범죄 등 각종 사고 원인·과정을 추적해 볼 수 있지만 이마저도 없던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사건을 해결한 걸까.◆수사기법 담긴 교과서 등장조선시대라도 막무가내로 범인을 체포한 것은 아니었다. 이 당시에도 상당히 과학적인 이론에 근거를 둔 수사 기법을 담은 법의학서가 나왔다. 대표
소싸움·강강술래·줄다리기 즐겨가족뿐 아니라 마을 모두 참여[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소가 큼직해요, 올 추석에는 우리 마을이 이기겠죠?”“허허, 정말 올해에 우리 동네에서 출전하는 소가 아주 강해 보이는구나.”조선시대에도 추석이 찾아왔다. 우리말로 ‘한가위’로 불리는 추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이다. 특히 추석에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놀이다. 요즘에는 영화나 게임 등 놀이가 풍부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마을 사람이 모여 명절을 함께했다. 이와 관련해 조선시대 전통 놀이를 알아볼까.◆마을끼리 벌이는 ‘소싸움’먼저 소싸움이 있다
신문기자 역할한 기별서리어명·상소 등 조정소식 적어농경 중요 시 날씨도 담겨구독층, 신분 높은 양반·관리[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예, 발표하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조선시대 왕의 비서실 역할을 하는 곳인 ‘승정원’ 관리가 ‘조보소(조방)’에 나가 그날의 기사를 발표하자, 사람들이 재빠르게 기사를 손으로 받아 적었다. 이들은 각 관청에서 나온 ‘기별서리(奇別書吏)’였다. 기별서리는 짧은 시간 안에 불러주는 기사를 베껴 쓰기 위해 ‘기별체’라는 독특한 글씨체를 사용했다. 이들의 역할은 조선시대 신문인 ‘조보(朝報)’의 소식을 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