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동탁은잔: 잔은 은제, 받침은 동제(銅製)(도 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동탁은잔: 잔은 은제, 받침은 동제(銅製)(도 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백제 무령왕릉 발견 은제 탁잔도 만병

중심의 큰 보주에서 무량한 보주 발산

맨 밑 만병에서 역시 만병인 은잔 화생

필자가 ‘자연과 조형예술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절감하고 경주행을 결단하여 온 가족이 신라 1000년 수도인 서라벌로 향한 것은 1970년이었다. 박물관 근무한 지 한 해만이었다. 그 당시에 지방의 국립박물관을 지망하여 내려가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 이듬해 1971년 7월 5일 백제 무령왕릉이 발견된 것은 오전 10시 30분. 오후 3시에 왕릉 출입구에 가득 메운 벽돌들이 드러나자 1시간 후에 무령왕(462~523, 재위 501~523)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고 6시간 뒤에 입구를 가득 메운 벽돌을 제거하고, 밤 10시부터 유물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시간대에 필자는 소식을 듣고 급히 공주를 향했으나 그 당시 교통 사정이 좋지 않아 대전에서 석간신문을 보며 묵고 있었다. 그 이튿날 아침 9시에 무령왕릉으로 바로 갔다.

아마도 발굴작업이 한창이겠지 생각하며 왕릉 앞에 당도하여 보니, 아침 햇살이 눈부신데 왕릉 안은 바닥에 빗자루질 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아무도 없었고 적막뿐이었다. 잘못 왔나 싶어서 알아보니 발굴이 끝났다고 한다.

간밤은 대전에도 비가 억수같이 오고 벼락 천둥이 쳤으며 공주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발굴이 끝날 리 없다. 발굴단을 결성하고서 1년은 족히 걸리리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발굴이 끝났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전에서 잠을 잔 밤사이에 모든 발굴이 끝났으며 아침 9시 발굴이 끝난 시점에 필자가 당도한 것이다.

국립공주박물관으로 급히 가서 보니 마당에 가마니가 가득했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지난밤에 발굴한 유물을 흙과 함께 가마니에 넣은 것이란다. 수백 개의 가마니가 가득 차 있어서 나는 매우 격분했다. 발굴이 아니고 도굴이었다.

그 와중에 삼국시대 왕릉들 가운데 왕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왕릉이었고, 특히 백제 왕릉들 가운데 도굴당하지 않은 유일한 왕릉이 하룻밤 사이에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천둥벼락이 치는 사이에 가마니에 마구 쓸어 담은 것이다. 그런 정황을 목도한 사람은 필자 이외에 없다. 폭풍이 지나간 다음의 적막감이 공주 전역에 감돌았다.

필자는 삼국시대 즉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미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여 온 미술사학자다. 특히 고구려 무덤 벽화를 내 나름으로 추구하여 그 연구 성과가 무한한 확장성을 띠고 있어서 우리나라 미술 전체를 연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동양은 물론 유럽 여러 나라의 건축, 조각, 회화, 금속기, 도자기, 복식 등 인류가 창조한 일체의 조형예술품을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백제 미술을 연구하려면 백제 것만 연구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폭넓게 연구하되 기존의 연구 성과를 비판하며 새롭게 탐구해야 한다. 그동안 산발적인 무령왕릉 전시를 자주 보아오면서 왕과 왕비의 관 금장식들과 목침과 족침 등의 조형에 관한 논문들을 써왔다.

금년으로 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이하여 박물관 수장고에서 무령왕릉 발견품들을 재발굴하여, 발굴 당시 실측도 한 장 없어서 어떤 유품이 어디에서 발견되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정성껏 정리한 뜻 깊은 전시가 내년 3월까지 열리고 있다. 필자는 한 달 전에 다녀왔는데 필자 또한 50년 만에 작품들을 모두 볼 수 있어서 감회가 깊었다.

필자의 눈을 끈 것은 왕비 시신 위쪽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은제 탁잔(托盞)이었다. 도자기 연재를 쓰는데 웬 탁잔인가. 이미 앞서 고려청자와 고려 금속기의 형태가 똑같은 작품이 있어서 비교하며 은제 주자도 만병임이 확실해졌다.

 

잔 받침 채색분석(도 2-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잔 받침 채색분석(도 2-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그렇다면 백제 무령왕릉 발견 은제 탁잔은 만병이 될 수 있는가. 물론 고려청자에도 탁잔이 있으나 백제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뿐더러 백제 것이 훨씬 영기화생의 전개원리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므로 사진과 그 밑그림을 올리며, 이 글에서 정교하게 다루고자 한다(도 1).

은제 탁잔의 실측도를 박물관 측에서 그려놓았으므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도면들로 채색분석하여 싣는다(도 2-1, 2-2, 2-3, 도 3). 이제 채색분석한 것을 설명하려 한다.

은제 작품에서는 매우 가는 날카로운 도구로 가늘고 힘차게 선으로 나타냈으므로 눈에 잘 보이지도 않거니와 그 조형들이 매우 낯설어서 아무도 도전하지 못했던 작품이다. 그러면 맨 밑에서부터 채색분석해 보기로 한다. 이 백제의 은제 탁잔이 어떻게 만병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동제 도금 받침부터 살펴 올라가 보기로 한다(도 2-1). 받침대는 낮은 접시 같다. 이미 <수월관음의 탄생>(글항아리, 2013년)에서 모든 그릇, 즉 도자기는 만병이라고 증명했었다. 그 낮은 접시 같은 모양을 위에서 보며 채색분석해 보면, 중심에 보주가 있고 사방으로 연꽃모양들이 뻗쳐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런 조형이 보주의 발산이라고 설명해 왔다. 즉 중심의 큰 보주에서 무량한 보주들이 발산하는 형국이다.

그 빨간 중심에는 그곳에 은제 잔을 고정시키도록 장치를 해놓았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보주들은 그 원 밖으로 갖가지 영기문이 화생하고 온갖 영수(靈獸)와 영조(靈鳥)들이 화생하는 장면이고, 더 나아가 은잔이라는 만병 즉 보주를 화생시키고 있으니 이런 깊은 사상을 어찌 밝힐 수 있을까. 이런 말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우나 이미 연재를 충분히 파악한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잔 채색분석(도 2-2-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잔 채색분석(도 2-2-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즉 밑 부분의 받침대의 영기문에서 뚜껑 있는 은잔이라는 만병, 즉 보주가 화생하고 있는 장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은잔을 두 방향으로 본 도면이 있어서 채색분석해 보면 매우 흥미 있다(도 2-2-1).

맨 밑에 대가 있고 둥근 잔 밑 부분에 받침 중심에서 본 것과 똑같은 연꽃모양 보주문이 있다. 즉 받침의 중심에서도 은잔이 화생하기도 하지만, 바로 잔 자체의 밑 부분의 ‘보주의 발산 모양’에서 동시에 화생하기도 하는 것은 이미 보아온 고려청자의 표현 원리와 똑같다.
 

면으로 된 제1영기싹으로 구성된 영수의 얼굴(도 2-2-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면으로 된 제1영기싹으로 구성된 영수의 얼굴(도 2-2-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그리고 은잔 표면 중간 부분에는 영수가 세 분이 연이어 있는데, 그 모든 조형이 다양한 제1영기싹의 집적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영수의 얼굴은 면(面)으로 된 다양한 제1영기싹으로 구성되어 있다(도 2-2-2).

몸의 곳곳에서 역시 면(面)으로 된 제1영기싹이 발산하고 있지 않은가. 그 영수 윗부분에는 면으로 된 제2영기싹 영기문으로 이어진 영기문이 돌려서 표현했다. 잔 표면에 있는 두 가지 영기문은 결국 같은 것이다! 놀라운 표현의지가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문양을 학계에서는 당초문, 혹은 그 용어를 한글로 바꾼 덩굴문양이라 부르니 탄식할 뿐이다.
 

뚜껑 평면도 채색분석(도 2-3)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뚜껑 평면도 채색분석(도 2-3)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다음에는 뚜껑을 위에서 본 조형을 채색분석해 보자(도 2-3). 중심부는 보주의 확산을 보여주고 있지만, 분명한 모양은 도 3에서 볼 수 있다. 사방에 영기문이 둘려지고 있는데 마치 용의 몸 같다. 사방에 이중으로 강화된 영기문이 따로 있으며 중심부 사이에 사방에 영수와 영조가 화생하고 있다. 전체 입면도를 채색분석해 보자(도 3). 즉 맨 밑의 넓은 접시도 역시 만병이고 그 만병에서 역시 만병인 은잔이 역시 화생하는 형국이다.

 

동탁은잔 입면도 채색분석(도 3)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동탁은잔 입면도 채색분석(도 3)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12.6

제20회에서 고려청자와 똑같은 형태의 고려금속기를 비교하여 같은 속성, 즉 만병의 영기화생의 전개원리가 같음을 알았다. 그만큼 영기화생론의 확장성이 넓어지고 있지 않은가.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확장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려청자와 형태가 달라도 모든 금속기가 만병이 될 수 있어서 실제로 금속기에 부여된 문양이 고려청자와 근본적으로 같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6세기의 은잔이 만병이라고 말하면 모두가 의아해할 것이다. 즉 그 은잔에 놀라운 영기화생의 조형원리가 아름답고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이미 목기(木器)와 도자기가 같은 영기화생의 원리가 표현되었음을 알고 서로 비교하여 다룬 적이 있다. 만일 이러한 이론이 널리 보편적이라면 진리에 다가갈 수 있으며 많은 조형예술품에 적용된다면 조형언어가 문자언어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도자기와 함께 목기와 금속기를 함께 다루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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