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귀때기 청봉 -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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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때기 청봉

이상국(1946 ~ )

 

나는 아직 설악 상상봉에 가 보지 못했네

이 산 밑에 나서 마흔을 넘기고도

한 해에도 수만 명씩 올라가는 그곳을

나는 여태 가보지 못했네

그곳에서는 세상이 훨씬 잘 보인다지만

일생을 걸어도

오르지 못할 산 하나는 있어야겠기에

마음속 깊은 곳에 대청봉 묻어 놓고

나는 날마다 귀때기 청봉쯤만 바라보네.

 

[시평]

대청봉은 설악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다. 내설악이나 외설악, 혹은 남설악 등지에서 등반을 시작해 며칠, 혹은 짧은 코스는 하루 만에 다녀오는 거리이기도 하다. 대청봉을 가기 위해서는 설악산의 또 다른 많은 봉우리나 능선들을 넘거나 지나간다. 이들 봉우리들 중엔 ‘귀때기 청봉’이라는 이름도 있다.

귀때기 청봉의 이름 유래에 관해서 전하는 이야기가 몇 개 있다. 설악산 봉우리가 높이로 서열 경쟁을 해, 높이대로 대청, 중청, 소청, 끝청으로 결판이 났는데, 좀 있다 봉우리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자기가 제일 높다고 우기다가 그만 귀때기를 맞고 지금 있는 곳으로 멀리 쫓겨나게 돼 ‘귀때기 청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여하튼 어떤 유래이든 ‘귀때기 청봉’은 왠지 서글픈 이름이다. 당당히 가장 높은 대청봉이 되지를 못하고, 귀때기처럼 어딘가로 뒤떨어진 곳에 대청봉 흉내나 내며, 외롭고 쓸쓸하게 서 있을 듯한 이름의 봉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슬픈 것은, 우리가 제일이 되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어설픈 흉내나 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귀때기 청봉은 슬픈 것이다. 이름도 슬픈 ‘귀때기 청봉’이나 바라다보며, 저 산 너머 먼 어느 곳에 아직 한 번도 올라가 보지 않은 산봉우리 하나쯤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간다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올라가야 할 산 하나쯤 지니고 산다는 것, 어쩌면 우리의 삶을 보다 관조적이고 여유로움으로 이끄는 힘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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