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불사 - 홍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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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

홍사성(1951~ )

 

김천 직지사는 중창불사를 하면서

부처님 법문 들을 때 올라가는 황학루를

약간 비껴 지었다 합니다

하필이면 누각 지을 자리에

못생긴 개살구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그 나무 살리려고 그랬다 합니다

쓸모없다고 베어내자는 사람 여럿이었으나

주지스님이 고집을 부려 할 수 없이

비뚜름하게 지었다 합니다.

[시평]

부처님 법문은 왜 듣는가. 부처님 법문을 듣고자 사람들은 왜 사찰로 모여드는가. 그 법문이 좋아서? 그럼 그 법문이 왜 좋은가. 법문이 좋은 것은 중생들이 중생과 ‘더불어 보람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그 길이 바로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삶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 법문을 듣기 위해 김천 직지사에서 황학루를 짓는 불사를 일으켰다. 그런데 누각을 지을 자리에 못생긴 개살구 한그루가 떡 하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살구도 아닌 개살구, 그것도 못생긴 모양의 나무가 서 있는 것이다. 부처님 법문을 들을 누각인 황학루를 보다 멋지고 반듯하게 짓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못생긴 개살구나무는 뭉텅 베어버려야 한다. 사람들 중론이 그랬다. 별 쓸데도 없는 개살구 한그루, 그것도 못생긴 놈 베어내면 어떠냐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지스님이 베지 말자고 고집을 했다고 한다. 저 못생긴 개살구나무도 중생인데, 중생과 더불어 잘 사는 길이 담긴 부처님 법문을 듣는 자리를 짓자고 저 중생을 베어내면, 어쩌겠는가. 그게 어디 불사(佛事)이냐고, 불사란 불법을 바르게 세상에 전하기 위한 자리를 만드는 일인데, 그 시작부터 그 정신을 훼손하니, 차라리 불사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나은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부처님 법문을 듣는 누각인 황학루는 오늘도 비뚜름하게 그 자리에 서 있다. 비뚜름하다고 해서 부처님 법문이 결코 비뚜름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리라. 비록 비뚜름하지만은, 그 비뚜름하게 서 있는 황학루에 앉아 듣는 부처님 법문이 비뚜름하게 세상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법문도 또한 아니지 않는가. 삐뚜름한 황학루에서 듣는 부처님 바르고 바른 말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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