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졸업식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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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식

 

 이정록

 

교복을 찢는 놀이가 있었지.

그건 날개를 꺼내는 의식이었어.

어디로든 어떻게든 날아가고 싶었지.

밀가루를 뿌리며 서로의 자유를 축복해주었지.

새로운 얼굴로 살 거라며 구두약을 바르기도 했어.

한번 날개를 펼치면 부나방이 된다는 것도 모르고,

첫눈 맞고 싶은 날마다 찢어진 밀가루 포대가 얼굴을 덮친다는 것도 모르고,

구두약 검정 가면 속 청춘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모르고.

 

[시평]

머잖아 졸업식 시즌이다. 초등학교를 비롯해, 중등, 고등, 그리고 대학, 대학원까지 졸업식을 한다.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은 그 동네 중국집이 대박이 나는 날이다. 졸업식을 끝낸 아이와 학부모들은 대부분 동네 중국집을 찾아와 자장면을 비롯한 중국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식은 좀 색다르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면 입지 않을 교복을 찢는다거나, 모자를 던져버리고 밀가루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얼굴에는 인디언의 전쟁 페인트마냥 구두약을 바르기도 한다. 이제 교복과 교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야! 술도 마시고 눈치 안 보고 담배도 피어 물고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고, 연애도 하고, 너무나 신나는 자유야!

어쩌면 이런 졸업식장에서의 이런 일들은 그 자유로움을 스스로 축복하는 의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복을 벗어 던지면, 그래서 교문을 나서면, 더 많은 문들과 교복들과 모자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직 그들은 모른다. 자신이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는 옷이며 모자, 그리고 자신이 혼자 열고 닫아야 하는 문들이 사회 곳곳에 있음을 그들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이제는 이런 졸업식도 할 수가 없다. 밀가루도, 교복도, 교모도 어쩌지 못한다. 교복을 찢고 날개를 꺼내는 일도, 밀가루를 뿌리며 서로의 자유를 축복해 주지도 못하며, 졸업식 아닌 졸업식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한번 날개를 펼치면 부나방이 된다는 사실 더욱 모르고, 구두약 검정 가면 속 청춘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더더욱 모르며, 우리들 모두 적당한 거리두기의 저마다의 쓸쓸한 졸업식을 마치게 될 것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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