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검진

구재기(1948 ~  )

 

작년보다
키가 또 줄었다.

해가
갈수록

발 디딘 흙이
더욱 가까워진다.

 

[시평]

나이가 들면 키가 줄어든다. 허리뼈도 굽어지고 그래서 그런가, 몇 센티씩 키가 줄어든다. 나이가 들면 이렇듯 키가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게 되면 척추 디스크가 얇아지고, 골밀도가 약해지면서 뼈가 변형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디스크 속 수분과 뼛속 성분이 빠져나가면서 키가 줄어들게 되며, 여성의 경우에는 폐경 이후에 골밀도가 낮아지면서 키가 급격하게 작아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키가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모습이다. 그러나 시인은 키가 매해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흙과 가까워진다고 말하고 있다. 흙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름 아닌 흙으로 돌아갈 날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든 존재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한 줌의 흙으로. 이렇게 본다면, 흙은, 땅은 모든 존재가 돌아가는, 그래서 이루는 근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행(五行) 중 흙이나 땅에 해당되는 토(土)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방으로 금(金), 목(木), 수(水), 화(火)의 모든 재료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어쩌면 몇 년에 한 번씩 하는 정기 검진을 통해, 우리의 건강을 점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우리들의 현실을 검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그래서 그 흙이 만물이 뿌리내리고 자양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그런 삶의 토양이 되는 그 날을 점검하는, 이것이 아마도 우리의 진정한 정기 검진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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