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아우슈비츠 이후 - 최명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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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이후  

최명란(1963 ~  )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이후에도 나는 밥을 먹었다
깡마른 육체의 무더기를 떠올리면서도
횟집을 서성이며 생선의 살을 파먹었고
서로를 갉아먹는 쇠와 쇠 사이의
녹 같은 연애를 했다
역사와 정치와 사랑과 관계없이
이 지상엔 사람이 없다
하늘엔 해도 없다 달도 없다
모든 신앙도 장난이다

 

[시평]

아우슈비츠는 과거 나치에 의해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던 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됐던 이 수용소는 훗날 197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매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의 명소가 됐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나치가 저지른 잔혹한 일을 실감하고, 마음 아파한다. 이런 일이 인류사에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은연 중 마음속으로 빈다. 이곳을 찾은 시인도 역시 이러한 끔찍한 역사의 만행을 실감하고 가슴 아파했으리라.

그러나, 그러나 삶이라는 일상은 그렇지를 않았다. 사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어야 했고, 아우슈비츠의 깡마른 육체의 무더기를 떠올리면서도, 횟집을 서성이며 생선의 살을 파먹었고, 서로를 갉아먹는 쇠와 쇠 사이의 녹 같은 연애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며 문득, 문득, 역사와 정치와 사랑과 관계없이 이 지상엔 진정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 하늘엔 우리를 환하게 비추어주는 해도, 또 달도 없다는 생각. 그리고 모든 신앙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그저 장난뿐이라는 생각.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외친 철학자 아도르노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기와 야수와 같은 역사 속에서도, 사람들은 밥을 먹고, 사랑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서정시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아픔과 광기에 대한 자각과 번민, 그리고 이와 함께 이어져야만 하는 우리의 일상, 이 또한 우리의 버릴 수 없는 삶이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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