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수조 앞에서 -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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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 앞에서

송경동(1967 ~  )

 

아이 성화에 못 이겨
청계천 시장에서 데려온 스무 마리 열대어가
이틀 만에 열두 마리로 줄어 있다.
저들끼리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먹힌 것이라 한다.

관계라니,
살아남은 것들만 남은 수조 안이 평화롭다.
난 이 투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다.

 

[시평]

요즘은 반려동물이 대세다. 대부분의 주택문화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어가고 있는 데도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동물들을 키운다. 작은 개, 또는 고양이 등을 이웃 모르게 키운다. 동물을 사람들이 키운다기보다는 함께 산다고 하는 것이 요즘은 옳다. 그래서 애완동물이라고 하지 않고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이라는 의미이다.

아이들 성화에 청계천 시장에서 열대어 스무 마리를 사서 집으로 가지고 와서 수조에 넣었다. 이틀이 지나고 나니 스무 마리였던 열대어가 열두 마리로 줄었다. 여덟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수조의 넓이가 스무 마리가 살기에는 비좁고 적당하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스무 마리가 자기들끼리 알아서 수조에 적합한 수로, 그렇게 마릿수를 조절한 것이리라, 그렇게 짐작이 됐다.

자기들 스스로 조절을 했다고 하니, 그저 그렇게 들리지만, 실은 조절하기 위해 서로 죽이고 죽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음이 분명하다. 강한 놈은 살아남고 약한 놈은 먹이가 돼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잠든 사이,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는 사이, 수조 안에서는 참으로 매우 치열하고 또 심각한 생존의 싸움이 벌어졌었던 것이다.

살아남은 열두 마리의 열대어들이, 여덟 마리를 흔적도 없이 해치운 열두 마리의 열대어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평화롭게 물속에서 유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평화’ ‘평화로운 관계’. 눈으로 보이는 이러함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죽임과 죽음이 있었는가. 이러함을 생각하면, 투명한 유리로 들여다보이는 수조의 그 세계, 우리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결코 다르지는 않으리라. 문득 섬뜩해진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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